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진 Jun 17. 2020

이경규 아저씨가 몰래카메라를 들고 달려와주시길

페이스북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20년 전쯤의 ‘몰래카메라’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스토리는 이렇다. 어떤 남성이 자동차 문을 열다가 한 여성이 문에 부딪혀 다치는데, 남성이 사과는커녕 여성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운다. 이 광경을 본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살펴본 몰래카메라였는데, 놀랍게도 80% 이상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여성의 편을 들고 남성에게 맞서 사과를 얻어냈다. 약 20%도 소극적으로나마 여성에게 도움을 건넸다.


몰래카메라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짠했다. 분명히 20년 전에도 거실에 누워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을 텐데, 20년이 지난 지금의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지금은 어떤가. 길거리에서 아무 이유 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거나 지하철에서 쓰러진 사람을 봐도 괜히 아는 척했다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세상이다. 좋은 마음에 손을 내밀었다가 오히려 잘못을 뒤집어썼다는 경우도 허다하다.    


20년 전, 어렸던 나는 몰래카메라를 나쁜 의도로 사용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 정지선을 잘 지키는 운전자에게 ‘양심 냉장고’를 선물하던 <이경규가 간다>는 안 보는 국민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프로그램이었다. 어쩌다가 이경규 아저씨 몰래카메라에 잡혀 냉장고 경품을 받아갈 수도 있으니 몰래카메라는 운전자들이 운전 법규를 잘 지키게 하는 선한 영향력만 끼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물건이 여자 화장실에서,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쓰이게 될 줄은 몰랐다. 몰래카메라 예능이 절대 다시는 부활할 수는 없는 이유다.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허락 없이 타인을 촬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의미가 천차만별로 달라진 것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큰 몫을 한다. 우연히 몰래카메라에 잡히면 냉장고를 받을 수도 있었던 세상이, 공중 화장실에 갈 때마다 위아래 틈을 확인해야 하는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몰래카메라가 나쁘지만은 않았던 세상이 있었다. 부당한 상황에 닥친 누군가를 마치 자신의 일처럼 돕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곤 했으니까. 만약 오늘 퇴근하는 길에 부당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반대로 부당한 사건에 휘말린 사람을 보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시민들이 용기를 내어 나를 도와주실까. 나는 용기를 내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을까. 어디선가 이경규 아저씨가 몰래카메라를 들고 달려와주시길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표님이 빨간펜을 들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