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이유가 이별의 이유인 이유

영화 제목은 <결혼 이야기>인데, '이혼 이야기'에 더 가까워보인다. 이혼을 앞두고 있는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스(아담 드라이버)는 상담사를 찾아가 이혼 상담을 받는다. 상담사는 이혼을 하기 전에 서로가 얼마나 사랑했고 그 사랑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기 위한 과정이라며 서로의 장점을 적고 읊어보라고 말한다. 니콜은 찰스의 장점을 줄줄이 적기는 했지만 결국 장점을 읊는 것은 거부하고 자리를 떠나는데, 영화는 니콜과 찰스가 서로의 장점을 읊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나는 이것이 이 영화의 거의 전부였다고 생각한다.

찰스가 보는 니콜의 장점은 솔직하고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이다. 까다로운 가족 문제에 대해서도 언제나 정답을 알고 있었고, 아들 헨리와도 잘 놀아주는 엄마다. LA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그녀가 쭉 LA에서 활동을 했다면 스타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찰스와 결혼하고 뉴욕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어찌보면 자신의 미래를 희생하기도 했다. 반면 니콜이 보는 찰스는 남들이 뭐라하거나 실패를 겪어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다. 깔끔해서 정리정돈을 믿고 맡길 수 있고, 아빠 노릇을 좋아해 헨리와도 잘 놀아준다. 그의 부모는 술고래에 폭력도 썼지만, 그는 자기 주변 사람들을 누구나 가족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그들은 이토록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부부다. 비록 이혼을 앞두고는 있지만 여전히 상대방의 장점과 특징에 대해 세상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이 읊은 서로의 장점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이유이자 이혼을 결심한 이유였을 가능성이 높다.  

만남의 이유가 이별의 이유가 된다. 냉철해 보여서 좋았는데 날카로움에 마음을 베일 수도 있고, 열정적이어서 좋았는데 감당하기 벅찰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이별은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다. 사소한 사건이지만 그 조그만 사건에 너와 나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 권석천, <사람에 대한 예의> 중에서

 

니콜은 처음엔 천재 프로듀서인 남편을 존경하고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그와 함께 사는 내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늘 지적을 당하는 것에 몸서리를 친다. LA로 돌아가자고 몇 번이나 찰스를 설득했지만 찰스는 그런 니콜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찰스는 니콜이 이미 잘 알고 있었듯이 다른 사람이 뭐라하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니까.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친구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너는 결혼하지 말라고. 무슨 일이냐 물으니 집 안에 같이 있어도 서로 휴대폰만 들여다 보고, 함께 하기로 한 약속들을 점점 아무렇지 않게 어기고 미루는 모습들에 지쳐간다고 했다. 누군가에겐 사소한 일처럼 보일 수 있는 일들이 또 누군가에겐 사무치게 외롭고 슬픈 일이었다. 별 거 아닌 일이라고 치부했던 그 지점부터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결혼의 이유가 이혼의 이유가 되는 것일까. 엔딩에서도 그는 여전히 그 사람다웠다. 그 모습은 내가 처음 그와 함께 영화를 그리기로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달라진 건 그가 아니라, 내 관점이었다. 상대방의 뒷모습을 바라볼 줄도 알게 된 나의 관점이 이별의 이유라면 이유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