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그리지도 못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그림 작가처럼

김중석 에세이,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

by 유수진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라는 에세이를 쓴 김중석 작가는 동화책에 그림을 그리거나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 전시를 기획하는 등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림을 그리는 분이지만 이 에세이 한 권에 담담하게 담아낸 자신의 일상과 그림 작가로 먹고사는 일에 대한 생각이 술술술 재미있게 잘 읽힌다.


나는 이전에 동화책 편집자로 일을 하면서, 김중석 작가와 같은 동화 작가분들과 업무적 소통을 한 적이 있어 그의 일이 어떤 일인지 다른 사람들보다는 아주 조금 더 잘 알고 있다.


그림동화책이 나오는 과정은 대략 이렇다. 글을 쓰는 작가가 원고를 쓰고, 작가와 편집자가 이 페이지에는 어떤 어떤 그림이 들어갔으면 좋겠어요~라는 의견과 함께 그림 작가에게 원고를 넘긴다. 그 후 그림 작가는 편집자와 약속한 마감날까지 그림을 그리고, 완성된 그림에 북디자이너가 디자인까지 더해 화룡정점을 찍으면 인쇄소로 넘어가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림동화책이 세상에 나오는 데 그림 작가가 맡은 역할의 비중은 가장 클 수밖에 없다. 오로지 까만 텍스트 형태로만 존재했던 원고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바로 그림 작가의 일이기 때문이다.




김중석 에세이,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


마음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순간에 오롯이 몰두할 수 있는 것이 있어서 좋았다.


누구나 한 번쯤 마음에 폭풍우를 겪는 사춘기 시절, 김중석 작가는 '그림'에 오롯이 몰두하며 그 폭풍우를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온갖 잡생각들을 천천히 내 마음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게 도와주는 그 무언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자 행복이다.


나는 예술가도 아니고, 글도 별로 쓰지도 않지만 예민하고 까칠한 편이다. 그 말인즉슨 작은 일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나 혼자만의 생각에 자주 빠지며, 오로지 나의 속도로, 나의 기분에 따라 움직여야 마음이 편할 때가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디 그렇게 사는 게 쉬운가? 특히 다 큰 자식이 부모님과 함께 살거나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을 하는 회사원에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삶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글을 쓸 때는 잡생각이 싹 사라진다. 나의 예민함을 곤두세우게 하던 주변 것들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쓰고 이 글을 잘 써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뿐, 수많은 잡생각들이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내 마음 바깥으로 밀려난다.


짧게는 1~2시간, 길게는 3~4시간 혹은 그 이상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에게 그것은 '글'이고, 앞으로 글을 많이 써야 하는 이유이다.



다시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던 어떤 보이지 않는 우연과 힘들. 이 모든 것들이 모두 모여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게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다거나,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부족할까 문득 화가 났다고 해보자. 이것은 그냥 단순히 내 마음속에서 우연히 일어난 일일까? 욱하는 성질 때문일까? 사실 20대 때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내 마음속에서 보내는 그 신호들을 무시하곤 했다. 잠깐 지나가는 해프닝 같은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이제와 돌이켜보니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은 내가 나에게 보내는 명확한 신호였다. 바다가 보고 싶은 것은 무언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신호였고,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부족할까 화가 났던 것은, 무언가를 잘해보고 싶다는 신호였다. 그 신호들을 무시하지 않고 잘 들어줘야 내가 진짜로 원하는 나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왠지 하기 싫은 일이 있고, 왠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 신호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지금의 내가 되었던 것 같다.



마음의 파도가 거칠어지고 폭풍이 불기 시작한다. 어서 작업실로 달려가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런 질투심과 부러움을 모두 작품으로 풀어내야 한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많이 읽어야 한다. 몸도 튼튼해야 한다. 미뤄 왔던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건강한 몸으로 더 건강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런 다짐을 수없이 한다.


별로 잘 쓴 글 같지도 않은데 베스트셀러에 올라 엄청나게 잘 팔리는 책을 보면 배가 아프다. 나도 맘만 먹고 쓰면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나 하는 찌질한 생각도 든다. 오호..?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찌질하다.


그럴 때마다 우울해지곤 했는데, 김중석 작가도 그런 감정을 느꼈나 보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질투를 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질투를 찌질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펑퍼짐해진 내 게으름에 총알을 쏴주는 방아쇠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 자신과 싸우라는 멋진 말도 좋지만 아무런 경쟁 상대가 없는 것보단 질투 날 만큼 나보다 더 나은 대상이 있어야 더 성장하고 싶은 흥이 나고 에너지가 나지 않겠나.


천부적인 재능은 부족하더라도 나의 그림을 성실히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는 나만의 모습으로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나는 요즘의 내가 좋다. 정말로.


성실함만 가진 사람보다는 재능만 가진 사람이 더 낫다. 그러나 재능만 가진 사람보다는 그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성실함을 겸비한 사람이 더 낫다. 재능을 가졌다면 성실함으로 그 재능을 보여주자.

하릴없이 빈둥거렸던 시간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이 없었던 시간들, 일과 일 사이에 비어 있던 무료한 시간들,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버텼던 순간들. 이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런 비어 있는 시간들이 없이 꽉 채워서 살기만 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숨 돌릴 시간 없이 뛰어오기만 했다면. 지금 보내는 이 비어 있는 시간들 또한 지나서 돌아보면 다 쓸모가 있을 것이다. 반드시.


나는 살면서 꽤 많은 '빈 시간'을 경험했다. 아무 계획 없이 휴학을 하고, 아무 계획 없이 몇 번의 퇴사를 겪으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곤 했다. 지금도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너무 아깝고, 그 귀중한 시간을 날려 보낸 것이 바보 천치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빈 시간들을 보냈으니 앞으로 더 채워진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그것도 잠시, 나는 또 숨이 찬다. 사람은 시간을 채우기만 하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절히 채우고 비울 줄 아는 것도 능력인 이유다.


현장을 취재하고 그린 그림은 확실히 생생하다. 머릿속으로만 맴돌던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살아난다.
현장에서 받아온 기운은 책에 그대로 표현된다.


그림도 그렇겠지만, 글을 쓸 때 자신이 직접 경험하거나 보거나 잘 아는 내용을 써야 글에 힘이 붙는다.

나는 사소하더라도 구체적인 사실을 나타내는 글을 좋아하는데 편지로 예를 들면 '나는 요즘 잘 지내고 있어'라고 쓰는 것보단 '요즘 매주 등산도 가고, 다이어트도 해서 살도 2kg이나 뺐어'라고 쓰는 게 좋다.

회사에서 PR 일을 하는 나는 관련 콘퍼런스에 직접 취재를 나가는 일이 종종 있다. 어깨에 카메라를 매고, 수첩을 들고, 콘퍼런스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한다. 몇몇은 쑥스러워 인터뷰를 거절하시지만 몇몇은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신다. 사진 촬영도 허락해주신다. 그렇게 내가 직접 찍은 사진과 직접 취재한 내용을 기반으로 글을 쓰면 글에 현장감이 붙는다. 누군가 대신 취재한 내용을 기반으로 글을 쓴다면 현장감은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 대신 보고, 대신 느낀 감정을 받아 적어서는 절대 살아있는 글을 쓸 수 없다.


연필로 스케치를 하면 안전장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이 이상하게 되면 지우개로 지우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과감한 선이 나오지 않는다. 멈칫멈칫 소심한 선이 나오게 된다. 처음에는 밑그림 없이 그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지만 조금만 하다 보면 더 과감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나는 그림을 잘 못 그린다. 연필로 스케치를 한다고 몇 시간 씨름을 하다가 색칠은 시작도 못하고 그만둔 적이 많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되든 안되든 알록달록 색칠이라도 한 번 했으면 더 재미를 붙일 수 있었을까?

글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글을 쓰겠다고 쓰다 지우다 쓰다 지우 다를 반복하면 영 속도가 나지 않는다. 나 역시 글이 잘 안 써지는 날은 종종 이렇게 쓰다 지우다 쓰다 지우 다를 반복하다 노트북을 덮는다.


젠가를 쌓아 올릴 때 누구도 처음부터 예쁘게 쌓으려 노력하지 않는다. 일단 뒤죽박죽 쌓아 올린 다음, 마지막에 긴 박스를 이용해 예쁘게 모양을 잡아주면 되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완성된 글이 나올 때까지 나 말고 누구도 보지 않으니 완벽한 문장을 쌓아 올릴 필요 없다. 우선 생각나는 대로 적은 다음 내 마음에 들 때까지 퇴고를 거쳐 완벽한 글을 만들면 된다.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 그림을 그리지만,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내는 김중석 작가처럼,

나 역시 잘 쓰지도 못하면서 글을 쓰지만, 나만의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dityo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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