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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un 15. 2018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견뎌낼 수 있을까

사십 대든 팔십 대든 견디지 못할 나이는 없다

"학생, 여기 닭갈비 집 오픈했는데 한번 와봐요."     


길에서 전단지를 나눠주시는 아주머니가 나를 '학생' 이라고 불렀다. 나에게 '학생' 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단지를 받도록 하기 위한 고단수 기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퍽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었다. 가끔 술집이나 편의점에서 주민등록증 검사를 받으면 짜고 치는 고스톱 같지만 기분이 오묘하(고 좋)다.     


이제는 '학생'이라는 말을 듣는 게 어색할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내 나이가 그때에 멈춰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열여덟 살 때가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는지 내 정신 연령은 열여덟에 멈춰버린 것만 같다. 열여덟의 우리는 장난처럼 서른이 된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클럽에 가면 이런 음악에 이런 춤을 추겠지, 한강이 보이는 고급 아파트에 누워 와인을 마시고 있겠지, 하면서.     


열여덟의 내가 서른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의 나는 마흔두 살의 나를 상상할 수 없다. 내가 과연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주름진 얼굴을 견뎌낼 수 있을까. 무턱대고 '아줌마'라고 불리는 것을 참아낼 수 있을까.     


서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스물아홉의 어느 날, 주위의 삼십 대 언니들에게 물었다. 삼십 대가 되면 기분이 어떻냐고. A언니는 ‘짜샤, 삼십 대 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했다. B언니는 사십 대에는 지금보다 더 좋은 차를 탈 수 있을 거라며, 사십 대가 기다려진다고 했다. C언니는 더 바빠질 거라고, 이십 대 때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된다고 했다. 삼십 대가 돼서 꿀꿀하다고, 삼십 대 되지 말라고 말하는 언니는 의외로 아무도 없었다.      


견뎌내고 말 것도 없이 서른이 되고 나니 언니들의 말처럼 삼십 대에도 꽤 좋은 구석이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대단한 서른은 아니지만 나름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실현하는 자립심을 가졌고, 경제적으로 넘치게 풍족하진 않지만 월급날만큼은 당당히 지갑을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또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 고민 상담을 해오면, 그들보다 조금 더 먼저 경험한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었다.     


사십 대가 되기 싫은 서른아홉의 어느 날, 언니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어떤 대답을 해줄까. 아마 그때도 사십 대 그거 별 거 아니라고, 오십 대가 더 기다려진다고, 사십 대엔 삼십 대 때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된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하얗게 센 머리카락 따위가, 얼굴의 주름 따위가 중요하지 않을 만큼 값진 것들을 많이 가진 사람이 된다면 사십 대든 팔십 대든 견디지 못할 나이는 없을 것 같다.     



어린 날의 나

이 글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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