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될 줄 몰랐어, 정말 미안해
그가 웃으며 내뱉은 한 마디가 밤새 잊히지 않았다. 웃으면서 말했으니 농담이라는 전제가 있었지만 단순히 농담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말 한 마디 때문에 몇 시간 동안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눈물이 나고, 주변 사람들의 말도 들리지 않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면 그것은 엄연히 상처였다. 고민 끝에 그에게 말했다. 너의 말 때문에 너무도 큰 상처를 받았다고. 그러자 그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상처가 될 줄 몰랐어, 정말 미안해."
살아오면서 내가 받아온 몇몇의 상처들 중 대다수는 '말' 때문이었다. 엄마가 별 뜻 없이 '네가 그럼 그렇지' 라고 했던 말이 그토록 잊히지 않을 때가 있었고, 약속 시간에 늦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귀찮다는 목소리로 "지금 가면 되잖아" 라고 말해 영원히 절교를 할 뻔했다.
말투, 억양, 목소리, 단어 선택 등 말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섞이면서 오해를 불렀고, 불필요한 다툼을 만들기도 했다. 내뱉어진 말은 공중으로 흩뿌려져 실체가 없는 듯 보이지만, 누군가의 가슴에 고름 덩어리로 침전해 있을지도 모른다.
말도 글처럼 기록이 된다면 우린 조금 더 신중하게 말하게 될까? 나는 펜과 종이를 쥐고 함부로 글을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주 짧은 편지를 쓰는데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몇 시간을 끙끙 앓는 사람들도 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이 편지를 버리지 않고 보관한다면 보관 기간 동안 편지 속에 적힌 말들은 죽지 않고 살아있을 테니까. 나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던 사람들도 글로 상처를 준 적은 없다. 그들이 써준 글은 오히려 눈물나게 고맙고,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아마 그 글은 말을 할 때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고민해서 썼을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뱉고 나서야 깨달았고 주워담기엔 이미 늦었다. 상처를 줄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간에 상대방이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은 말이 아니라 칼이었다. 내가 휘두른 칼에 베였다면 사과하고 싶다. 덧붙여 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몰랐다' 는 말이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으니까.
말은 백스페이스키로 지울 수도, 고칠 수도 없기에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 말도 편지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보관되어 있다면 보관 기간 동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다. 오늘 나는 무슨 말을 했는지, 그것이 칼은 아니었는지 되감아본다.
이 글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