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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un 19. 2018

내일 당장 퇴사할 것처럼 일해야지

저도 언제 떠날지 몰라요

인턴 사원이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인턴 계약이 끝나면 아쉬울 것 같다고 말했다.


"더 좋은 회사로 가면 되죠. 저도 언제 떠날지 몰라요."


내 진심을 담은 대답이었으나 그녀가 듣기엔 재수없는 소리였을 것이다. 남아 있을 수 있는 자의 콧노래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몇달 후, 나와 함께 일을 해본 그녀가 말했다.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겠다고. 자신도 나처럼 회사에 미련을 갖지 않고 일하게 되었다고.


"괜찮아요. 대충하면 되죠."

"신경쓰지 마요.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닌데."


하나도 괜찮지 않았고, 대충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녀와 함께 일하면서 가장 자주 한 말이었다. '완벽주의' 소리 좀 듣던 내가 당장 내일 퇴사할 사람처럼 굴기 시작한 건, 내가 가진 그릇보다 훨씬 큰 프로젝트 맡은 후부터였다. 처음으로 '매니저'라는 직함을 달고 인턴 동료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고,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3순위 문제보다는 2순위 문제를, 2순위 문제보다는 1순위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게 중요했기에 실수를 하면 실수를 한 대로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타 등등의 것들까지 사사롭게 신경쓰다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손도 대지 못할 것 같았다. 특히 인턴 동료는 작은 실수에도 겁을 먹고 당황했는데, 작은 실수 정도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했다. 사실 나도 똑같이 겁을 먹었지만.


당장 내일 퇴사할 것처럼 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악착같이 다 챙길 생각은 않고 한두 개 정도는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며 안일하게 일하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사로운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가장 중요한 문제만큼은 꼭 지켜내며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동료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퇴사' 이야기를 꺼내는 건 내 행동의 지나친 가벼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회사가 아니면 안 된다고, 회사에 뼈를 묻겠다고 생각하면 회사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성장을 멈추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회사의 톱니바퀴가 아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진짜 주인으로 일할 수 있었던 건 근거없는 자신감 덕분이었다. 시간에 상관없이 일에 빠져 살 만큼 회사와 일을 사랑했지만 이 회사가 내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걸 상사가 알아주길 바란 적은 있지만 마음에도 없는 아부로 경력을 연명한 적은 없었다. 회사에 미련없이 내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사장만큼 주인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몇 년간의 회사 생활을 통해 배웠다.


영화배우, 제임스 딘은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라고 말했다. 예전엔 이 말이 참 거창하게 들렸는데, 이제는 좀 더 현실적으로 들리는 것 같다. 


이 글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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