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무(無) 사고로 살리라는 나의 목표는 실패했다. 운전 경력 6개월 만에.
차 한 대를 뽑았다. 면허를 취득한 건 2011년이니까 장롱 면허를 탈출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린 셈. 면허 시험을 본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 모두 "운전할 것도 아니면서 면허를 왜 따?"냐고 물었다. 맞다. 나는 그 당시 운전을 하려고 면허를 딴 게 아니었다. 운전대를 잡으면 더 어른스러운 어른이 될 것 같아 면허 시험만 봤을 뿐이지, 감히 내가 운전과 같은 위험천만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필기와 도로 주행 시험에 한 방에 붙었고, 선생님은 나에게 "운전 잘할 것 같다"며 감 떨어지기 전에 얼른 운전을 하라고 했다.
선생님의 말씀과 달리, 내 실제 운전 경력은 그로부터 9년 뒤인 올해부터 시작됐다. 회사가 강남 쪽에 있어서 출퇴근길에 운전을 하기도 어렵고 딱히 당장 차가 필요한 일도 없지만 왠지 '지르고' 싶었다. 일종의 오춘기, 어쩌면 우스운 반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나이까지 크게 다쳐본 적도 없고, 집안을 뒤집을 만한 사고를 쳐본 적도 없다. 80점대의 고만고만한 점수를 받으며 학교에 다녔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뒤로 나름의 눈물, 콧물 빼는 사연도 있었지만 결국 꽤 안정적인 직장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인생의 가장 큰 숙제를 해결하고, 안전 궤도에 안착했다고 생각했건만. 직장 경력 3년이 지난 시점부터 슬슬 매일 똑같이 돌고 도는 일상이 지겨워졌다. 갑자기 휴가를 내고 대충 꾸린 가방을 트렁크에 던져 넣은 채, 바다를 향해 액셀을 밟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던가.
옷 한 벌도 결제했다가 취소했다가 다시 결제하는 쫄보가 차를 사겠다고 평생 써본 돈 중 가장 큰돈을 썼다. 내 인생 회심의 지름. 차를 사자마자 후면에 ‘초보운전’ 딱지를 크게 붙여놓고, 여러 차례 운전 연수를 받으며 안전 또 안전하자고 다짐했다. “지금 나는 브레이크를 밟고 있어”, “이제 곧 엑셀로 발을 옮길 거야”라고 육성으로 확인해가며 운전했다. 무탈했던 내 인생처럼, 평생 차 사고 따윈 없다며 호언장담한 지 6개월이 흘렀을 때쯤,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나자고. 왠지 모를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붙은 시기였다.
예상치 못하게도 카페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주차장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파른 경사로에서 차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어째야 하나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데 저 멀리 먼저 도착한 지인의 모습이 보였다. 지인을 보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아, 모르겠다! 결국 경사로에 주차를 했다. 두세 번 이상 배운 적 없는 짓은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는데, 급한 마음에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고 서둘러 지인을 향해 달려갔다.
사고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지는 것. 무탈할 줄만 알았던 내 인생은, 깜빡이도 없이 찾아온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뒤 한동안 올스톱이었다. 내가 왜 상처를 받아야만 했을까. 아니, 예상할 수 있었다면 사고가 일어날 일도 없었겠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내 인생은 앞으로도 쭉 탄탄대로일 거라고만 생각했던 안일함이 사고의 원인이라면 원인이었을까. 인생에 항상 좋은 일만 있었다고 또 좋은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항상 나쁜 일만 있었다고 또 나쁜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마 나는 한동안 그 법칙을 잊은 듯 눈 감은 채 살았던 모양이다.
지인과 커피를 마신 후 차를 빼서 집에 가려고 하는데 아차, 느낌이 이상했다. 뒤는 곧바로 도로이고, 앞은 다른 차로 막힌 상태인데 차가 생각보다 급격하게 앞으로 밀렸다. 어어, 우선 앞의 차를 빼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조심히 차를 빼려고 하는데. 어어어, 밖에 있던 지인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나에게 얼른 차에서 내려보라고 했다. 차가 도랑에 빠졌다고, 그것도 뒷바퀴가 들린 채!
혹시 몰라 화재보험 연락처를 저장해놓은 게 다행이었다. 평생 무사고일 거라고 주변에 큰소리는 쳤지만 내심 언젠가 한 번쯤은 날 사고에 대비하고 있었다. 인명 피해도, 다른 차와도 전혀 부딪히지 않은 아주 경미한 사고였지만 나는 첫 차 사고 앞에서 생각보다 큰 패닉에 빠졌다. 전화를 한 지 15분이 흘렀을 때쯤 출동 요원이 도착했고 "많이 놀라셨죠?"라는 인사에 "네... 정말 많이 놀랐어요..."라는 대답이 저절로 나온 것을 보면. 요원 분이 5분도 안 돼서 차를 도랑에서 빼주셨고 차의 흠집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만하면 정말 다행인 사고였다.
운전 경력 6개월 만에 평생 무사고로 살리라는 나의 목표는 실패했다. 그런데 어쩐지 좀 다행이다 싶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뒤 사람 보는 눈이 더 좋아진 것처럼, 이번 사고를 계기로 좀 더 운전을 조심히, 그리고 더 잘해야겠다는 경각심이 생겼으니까. 운전도, 인생도 평생 무사고일 거라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매 순간 전방을 주시하고 좌우를 살피며 대비하면 회복 불가능하리만치 큰 사고는 피할 수 있다. 실수를 발판 삼아 운전 실력을 더 키우고, 삶의 범위를 넓히면 그것은 영원한 실패가 아니라 단순 사고로 남는다. 잊지 말자. 사고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의 가장 연약한 곳에서 터질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