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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un 16. 2020

나사못을 조여야 마음이 편해지는 병

연차를 냈다. 늦잠 좀 늘어지게 자보려 했건만, 아니나 다를까 원래 일어나던 시간에 눈이 떠져 버렸다. 출근을 하는 보통의 날이었다면 알람 소리를 듣자마자 이불을 털고 일어나 화장실로 직행해야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뭘 해야 할지 몰라 자꾸만 여기저기 연락을 뿌렸다. 영화 <모던타임스>에서 반복적으로 나사못을 조이던 찰리 채플린이 작업을 멈추고도 계속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처럼, 내 몸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날에도 회사에 출근하는 날과 같이 바삐 움직이려고 했다.


한동안의 피로가 쌓여 마음처럼 쉽게 몸이 움직이진 않았다. 얼마나 고됐는지 어젯밤 꿈에 누군가 내 다리를 잘라버린다고 했다. 사무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퉁퉁 붓는데 아마도 그날은 다리가 무지 아팠나 보다. 그렇게나 피곤한데도 결국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침밥을 먹고, 나갈 채비를 하는 중에도 힘에 겨워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언젠가부터 내가 제대로 쉬고 있다는 느낌을 느끼지 못했다. 하루 종일 경직됐던 근육의 힘을 풀고 누우려 해도 자꾸만 온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고, 잠깐 멍을 때리고서도 한 편의 글을 더 쓰지 못한 게으름을 자책했다. 어떤 식으로든 내 몸과 머리를 바쁘게 만들려는 충동이 나를 온전한 쉼에서 멀어지게 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게 더 편하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보다 출근하지 않는 게 더 편하듯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결국 에너지를 쓰는 일이므로. 그 어떤 일이라도 하면 할수록 편함과는 멀어진다. 그런데 살다 보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몸은 편해도 마음이 불편할 때가 많았다. 퇴사를 하고 백수가 되면 편할 줄 알았더니 자신감이 무너졌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이 괜히 밉게 들리고, 밥값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 대단한 시나리오를 작업하고 있는 양 떠들었다.


그 후부터 차라리 몸을 괴롭히는 쪽을 택했다. 뭘 했다고 벌써 점심시간이야, 뭘 했다고 벌써 서른몇이야, 뭘 했다고 벌써 크리스마스야,라고 말하면서도 매 순간 나사못을 조였다. 하루쯤 마음 편히 쉬려고 연차를 낸 날에도 어떻게든 나사못을 조이려는 불안감이 요즘은 안쓰럽게 느껴진다. 버겁다고 느끼면서도 잠시도 멈출 줄을 모르는 가엾은 몸. 뭐라도 하지 않아야 편한 거라는 걸 언제쯤 알까.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와서도 나사못을 조이는 건 병이란다,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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