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인 중에서 리더를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유재석, 강호동 씨가 자주 입에 오른다. 본인의 강점을 살려 오랫동안 유명 프로그램의 메인 MC를 맡고 있다는 점, 숫자적으로도 많은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는 점, 뒤따르는 수많은 후배 예능인들이 있다는 점 등이 대표적인 리더로 손꼽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신인 예능인들에게 ‘어떤 선배를 존경하는가?’라고 물으면 보통 이 두 사람을 꼽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만약 내가 예능인이라면, 내가 존경하고 싶은 예능인은 그 두 사람의 한참 선배인 이경규 씨다. 물론 유재석 씨와 강호동 씨도 훌륭한 예능인이며 시청자인 내가 그들의 실제 모습을 샅샅이 다 알 수는 없지만, 미디어에 비친 이경규 씨의 효율성, 유연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띈다.
이경규 씨는 뭐든지 ‘빨리빨리’로 유명하다. 언젠가 <무한도전>에 출연해서도 MC인 유재석 씨에게 “녹화 언제 끝나냐”를 몇 번이나 물었다. 물론 농담이다. 그리고 진담이기도 하다. 종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재석, 강호동 씨와 함께 일을 한 동료들이 그 두 사람과 프로그램을 하는 게 힘들다는 이야길 농담 삼아하곤 한다. 이유는 ‘과하게’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더 좋은 웃음을 만들기 위해 동료들의 사기를 북돋고 한 컷이라도 더 뽑아내는 열정은 박수받아 마땅하나, 모두의 ‘열심’이 나의 ‘열심’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강호동 씨가 진행했던 SBS <스타킹>을 포함해 많은 예능 프로그램의 녹화 시간이 매우 길다고 한다. 지금이야 그때 출연한 패널들을 ‘피해자’라고 부르며 예능의 소재 거리가 되었지만, 장시간 밤샘 녹화를 하며 높은 텐션으로 웃음을 만들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대충 하자’가 아니라 ‘기왕이면 빨리하자’는 이경규 씨의 모토에 두 팔 들어 공감하는 이유다. 모두가 최고의 텐션으로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좋은 성과를 내는 효율성을 추구한다.
또한 이경규 씨는 반드시 메인 MC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이경규 씨가 <무한도전>이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패널로 출연했을 때 굉장한 신선함을 느꼈다. 이경규 씨 급의 메인 MC가 그러한 작은 역할로 출연하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존경받는 리더가 다양한 자리에서, 본인의 역량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펼쳐내는 모습을 후배들이 보고 성장한다면, 해당 분야의 스펙트럼은 훨씬 더 넓어지지 않을까. 이경규 씨는 유명 프로그램의 패널로 참여함으로써 언젠가 1인자 자리에서 내려와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도 그것이 초라하다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또 다른 자리를 찾는 과정임을 증명해낸다. <무한도전>에 출연했을 당시에도 그는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작은 패널의 역할을 메인급으로 격상시켰다.
마지막으로 이경규 씨는 개그뿐만 아니라 영화, 애견, 라면, 낚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는 도전가다. 한 우물을 파는 스페셜리스트도 좋지만, 앞으로는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연결시킬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주목받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경규 씨는 그의 관심사를 예능 프로그램과 연결시켜 <도시어부>, <개는 훌륭하다>와 같은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92년에는 영화 <복수혈전>의 감독이자 주연으로 변신해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원동력은 여러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는 호기심, 그리고 도전 정신이라고 믿는다.
먼 훗날 리더가 된다면, 가끔은 리더의 위치에서 한 걸음 내려와 후배들과 눈을 맞추기도 하고, 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며 새로운 요소들을 이리저리 연결시켜 나갈 수 있는, 이경규형 리더를 꿈꾼다. 호통을 쳐도 밉지 않은 리더가 되기 어디 쉬우랴. 지금은, 그런 리더를 바라보며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