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진 Aug 21. 2020

꿉꿉한 빨래 냄새나면 출근도 하지 마요?

유튜브를 보다가  섬유유연제 중간 광고를 보고 경악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광고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부분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재택근무 중인 회사원들이 화상 회의를 하고 있다. 회의를 마친 팀장이 "다음 주부턴 정상 출근합니다"라고 하더니  직원에게 "이향기 대리는 자택에서 계속 근무하시는 걸로"라고 한다. ? 옷에서 나는 꿉꿉한 냄새 때문이란다.


광고 영상 화면 캡처

이향기 대리는 원룸에서 산다. 베란다가 없어 실내에서 빨래를 말리는 게 냄새의 요인이라는 설정이다. 같은 팀 동료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솔직히 저희 진짜 숨 쉬기 힘들었어요"라고 하자, 나머지 동료들은 “우리가 좀만 참으면...”이라고 한다. 이향기 대리가 무척 당황해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자 그런 이 대리를 구원하기라도 하듯 다른 동료가 나타나 섬유유연제를 써보라고 권한다.


"쟤한테서 냄새나지 않냐?"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반에는 꼭 한 명씩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심하게 괴롭힘을 당한 친구가 있었는데, 아마도 누군가 그 친구에게서 '냄새'가 난다며 코를 잡았던 순간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한 친구가 코를 잡고 그 친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자 다른 친구들도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코를 잡았다. 그날 이후 그 친구 옆을 지날 때마다 코를 잡는 것은 의례적인 행동이 되어버렸다. 


때론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사람을 죽인다
-권석천, <사람에 대한 예의> 중


그 친구에게선 정말 냄새가 났을까? 냄새가 났다면 어떤 냄새가 났을까? 학창 시절에 체육 시간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와 체육복을 갈아입을 때면 남학생들에게서 코에 찌르는 땀냄새가 났다. 더운 여름날 축구를 하다 보면 충분히 날 수 있는 땀냄새였다. 몇몇 남자아이들은 장난을 친다며 여학생들이 있는 쪽으로 본인의 체육복을 던졌고 여학생들은 도망치느라 바빴다. 남학생들은 그게 재미있다며 배를 잡고 웃었다. 나는 여학생들 중에선 흔치 않게 체육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날은 남학생들 틈에서 같이 뛰어다녔다. 그러다 보니 내 체육복에서도 땀냄새가 났는데, 나는 왠지 땀냄새가 부끄러워 하루 종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냄새가 난다고 손가락질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원룸에 살지 않는 나도, 최근 긴 장마 기간 동안 꿉꿉한 옷을 입고 다녔다. 꿉꿉한 냄새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향수를 두어 번 더 뿌렸다. 때때로 회사나 출퇴근길에서 덜 마른빨래 냄새를 맡곤 했지만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물론 개인과 상황에 따라 냄새를 민감하게 느끼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타인의 빨래 덜 마른 냄새가 불쾌해 불만스럽다면, 본인이 함께하는 공동생활을 피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조금만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았더라면 원룸에 사는, 건조기 한 대 살 여유가 없는 이향기 대리가, 동료들로부터, 꿉꿉한 빨래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너 때문에 숨 쉬기가 힘드니, 회사에 나오지 말라는,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의 콘텐츠가 세상에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묻고 싶다. 누구나 꿉꿉하지 않은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당신은, 꿉꿉한 빨래 냄새가 나는 사람에게 출근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하는지. 아니, 내가 보기에 회사에 나오지 말아야 할 사람은 이향기 대리가 아니라, 함께 일할 마음이 없는 나머지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섬유유연제 광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해당 광고 및 브랜드명을 직접적으로 표기할 순 없지만, 누구나 아실 법한 섬유유연제이기 때문에 궁금하시다면 광고를 직접 찾아보시기가 어렵진 않을 거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