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희는 아침 7시만 되면 "수진아, 같이 학교 가자"하며 우리 집 거실을 꿰차고 앉아 내가 등교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태희의 과한 성실함에 우리 가족도 나도 모두 부담스러워했지만 태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같은 시간마다 우리 집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3분 거리. 나랑 불과 몇 걸음도 채 같이 걸을 수도 없는데, 태희는 왜 그렇게 일찍부터 나를 기다렸을까. 그 어린 나이에도 누군가가 나를 매일 기다려주니까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는지 나는 그런 태희가 조금 귀찮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등굣길마다 진선이의 집 앞에서 매일 기다리기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진선이네 집에서 건널목 하나만 건너면 바로 학교였지만, 그 건널목이라도 같이 건너고 싶어서 매일 건널목 앞에서 진선이를 기다렸다. 나는 일찍 등교를 하는 편이고, 진선이는 가까스로 지각을 면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기다리는 건 늘 내 몫이었다. 같이 학교에 가자고 약속은 했어도, 굳이 매일 진선이를 기다릴 필요는 없었는데 그때는 혼자 정문을 지나기가 참으로 싫었다. 진선이도 나와 같이 등교하는 일에 성실함(?)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우리는 늘 그 차이에서 옥신각신했다.
누군가와 3분 거리를 같이 가기 위해 1시간을 넘게 기다리는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건널목 하나를 같이 건너기 위해 누군가를 30분 넘게 기다리면서 알게 됐다.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전부일 때 거리도, 시간도 모두 의미 없어진다는 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태희는 나를 가장 순수하게 좋아해 주었던 친구였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엔 스마트폰도 없어서 시간을 보내기가 지루했을 것이고, 아무리 내색하지 않아도 남의 집 거실에서 멀뚱멀뚱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텐데 태희는 전학을 가기 전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기다렸다.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욕이란 욕은 다 해도, 저 멀리서 진선이가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뛰어!" 깜빡깜빡거리는 마지막 신호등을 가까스로 지나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한 채 우리는 각자의 반으로 들어갔지만, 왠지 모르게 나 혼자 세이프하는 것보다 진선이와 함께 세이프하는 것이 더 마음이 편했다. 참으로 순수했고 계산 없이 좋아했다.
요새는 친한 회사 동료와 집 방향이 같아 퇴근 시간이 맞으면 같이 회사를 나서고 있다. 그녀와 같이 동행을 하기 전까진 혼자서 잘만 다니던 퇴근길이었는데, 그녀가 야근을 하거나 저녁 약속이 있어 동행을 하지 못하면 퇴근길이 그렇게 헛헛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매일 왔다 갔다 하는 지루한 길이, 누군가와 발을 맞추면 든든한 위안이 되는 것은 신발주머니를 든 그때에나 가죽 백을 든 지금이나 같다.
겉으론 태희를 귀찮아하는 척했지만, 태희가 전학 간 후로 한동안 그녀가 앉아있던 거실 한 구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함께일 땐 겨우 3분 거리였던 학교도, 며칠간은 도저히 갈 수 없을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