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꿈'을 주제로 칼럼을 요청받았다. 회사원인 내가, 퇴근 후 새벽 시간을 이용해 글을 쓰고, 그것이 출간으로까지 이어지며 작가라는 꿈을 펼쳤다는 것이 대주제. 딱 한 글자인데, 왠지 거창해 보이는 '꿈'이라는 단어를 내세우긴 민망하지만, 작가는 내 평생 꿔본 꿈 중 가장 꿈같은(?) 꿈인 것은 사실이다.
10대 때엔 하루 종일 가요 프로그램만 봤으니 어른이 되면 당연히 핑클 언니들 같은 가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20대에 들어, 아주 조금 현실적 사고가 가능해지면서 연예인은 내 길이 아님을 깨닫고, 그렇다면 텔레비전 화면 뒤에서 일하는 방송 작가가 되면 어떨까 했다. 잡코리아 공고를 통해 방송국에 들어가 12시간 야외 촬영을 맛본 뒤, 딱 한 달 만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쳐 그 꿈은 끝이 났지만. 그 후로는, 무조건 안정적인 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목표로 주야장천 자격증 시험만 보다가 다행히 20대 후반, (자격증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만족스러운 회사에 골인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어?
혹자는 몸서리를 친다. 밤새워 수능 공부를 하고 싶지도 않고, 다시는 지옥 같은 취업 준비생 시절을 겪고 싶지 않다는 이유다. 그런데 나는 가끔씩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 친구가 올 때까지 집 앞에 죽치고 앉아 기다리는 낭만을 다시 느끼고 싶고, 5,000원짜리 아메리카노가 아닌 500원짜리 떡꼬치 하나로 세 시간은 거뜬히 수다를 떨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춘이 최고의 무기인 20대에, 취업이라는 맹목적 목표가 아닌 제대로 된 꿈을 가져봤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은, 과거를 동경하는 소설가로 등장한다. 술에 취해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다 한 차에 올라타게 되고 헤밍웨이, 피카소 등 그가 꿈꾸던 1920년대 대표 예술가들을 만나게 된다. 황금시대를 누비는 예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내던 중, 1890년대를 동경하는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길은 그녀와 함께 1890년대로까지 이동하게 되는데, 드가와 폴 고갱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그녀가 길을 붙잡으며 말한다.
우리, 안 돌아가면 안 돼요? 현실은 지루해요
길은 깨닫는다. 자신에겐 1920년대가, 그녀에겐 1890년대가 황금시대임을. 우리는 현실에 만족할 수 없어 과거를 동경하지만, 과거에게는 또 다른 과거가 있다. 길은 현실로 돌아와 마음이 맞지 않던 약혼자와 파혼하고, 자신과 함께 비 오는 날 비를 맞으며 길거리를 걸어줄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합시다"라는 노래 가사가 흘러나오는 이 영화가 말하듯, 오직 사랑만이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 줄 뿐, 과거는 현실의 고통을 없애주지 못한다.
지금 20대로 돌아간다면, 작가라는 꿈을 더 빨리 이루어낼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확실히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미련하게 울고 어리석게 깨졌던, 그때의 허튼짓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글을 쓸 생각도, 감정도, 무게도 없었을 테니까. 돌이라도 씹어 먹을 수 있었던 청춘이 하루 종일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며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심혈히 고민했고, 적성과 맞지 않는 직업으로 두 번의 퇴사를 겪으며 반드시 내 것을 찾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이 작가의 꿈을 펼치는 '초안'이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약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가? 이 질문에는 아직도 망설여진다. 다만, 이 한 마디는 꼭 나에게 해주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싶다. 너는 꿈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그때의 너를 후회 없이 사랑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