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다 쓴 다음에 꼭 제목을 지어주세요

by 유수진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면서 멤버 분들께 꼭 당부드리는 말씀이 있다.


"글을 다 쓰신 다음에 꼭 제목을 지어주세요"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에세이를 쓰기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글의 제목을 짓는 일이 습관화되어 있지 않았다. 어떻게든 한 편의 글을 써내는 데에만 몰두하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 '끝!'을 외치며 이불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것이 정말 '끝!'일까? 브런치는 제목을 써야 비로소 발행이 가능하다. 사람들에게 내 글을 보여주려면 달콤한 이불 안에서 기어 나와 30자 이내의 제목을 지어야만 한다.


제목은 중요하다. 제목은 독자의 관심을 환기하고, 일견 모호하고 불투명한 책 내용을 선명히 해줄 수 있고, 다면적인 글 내용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제목으로 인해 비로소 글이 완성되는 멋진 경우도 있다. -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중에서


제목을 짓는 일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친구는 채용 사이트에 이력서를 다 작성해서 올렸는데, 마지막에 한 문장으로 제목을 넣는 란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 고민이라고 했다. 실제로, 내가 한 회사에서 면접관으로 참여했을 때 해당 채용 사이트의 이력서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혹은 '성장하는 마케터가 되고 싶은 OOO입니다'로 제출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무난하고 별 거부감 없는 제목임에 틀림없지만 그만큼 눈에 띄기도 어려웠다. 30자 남짓한 제한된 글자 수로 내 이력을 효과적이고 종합적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니!


글의 제목을 짓는 일은 하루를 묶어내는 일기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핵심적인 한 장면을 뽑아 글을 쓰는 것. 어제와 오늘이 무엇이 그렇게 다르고 특별하겠는가. 하지만 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반드시 어제와 다른 오늘의 특별함을 찾아낸다. 없다면, 일부러 특별함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해 오랜 시간 아이들과 집콕 생활을 이어가는 내 친구는, 매일 '엄마표 미술놀이'로 아이들과 색다른 하루를 보낸다. 어제는 점토로, 오늘은 물감으로, 내일은 색연필로. 비록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해도 아이들은 그렇게 매일 색다른 하루하루의 추억을 쌓아간다. 평범한 내 이력을 제목으로 뽑아내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리되지 않은 모든 것은 눈에 띄지 않고 사라진다. 내가 2019년 5월에 출간한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라는 책도, 목차를 구성하고 제목을 짓지 않았더라면 한 뭉치의 원고 더미로 남아 있었을 뿐,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진 못했을 것이다. 열 문장이든 백 문장이든, 글을 썼다면 제목을 지어 묶어야 한다. 제목은 반드시 필요하니까. 글에도, 우리의 삶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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