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진 Sep 15. 2020

운전은 큰 벽이었고 나는 그 벽을 무너뜨렸다

작년 이맘때쯤, 주변 사람들이 진절 머리가 날 정도로 차를 살까 말까 고민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운전을 하고 싶었던 건 사실 그보다 더 이른 재작년 정도부터였는데, 내가 차를 사겠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 모두 만류했다. 딱히 운전할 일이 없는데 뭐하러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냐는 것이었다. 겉으론 "아, 왜! 나도 차 살 거야!"라고 했지만 속으론 내심 나도 차를 사기가 무서웠다.


한 번 내지르면 언젠가는 기어이 그 일을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결국 그다음 해에 중고차 한 대를 구입했다. 혼자만의 오랜 고민(거의 전쟁) 끝에 구입해서인지 차를 사서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식도와 배 중간쯤에 얹혔던 음식물이 쭈욱 소화가 된 것처럼 속이 후련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차를 사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차를 몰고 다닌 날보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던 날이 훨씬 더 많았으니까 말이다. 내 차는 동네 주변만 순회하는 코끼리 차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뭐.


그래서 차를 산 걸 후회하냐고?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나에게 운전은 인터넷을 배우는 것과도 비슷했다. 어렸을 적 인터넷이 처음 생긴 시절에, 우리 언니는 집에서 컴퓨터 과외를 받았다. 엄마는 과외비가 아까우셨는지 나보고 언니 뒤에 앉아서 같이 수업을 들으라고 했다. 아무리 어려도 눈치가 있는데, 내가 틈에 끼어서 같이 수업을 들으면 과외 선생님이 싫어할 것 같기도 했고, 뒤에서 주워듣는 정도로는 어려운 인터넷 세상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언니는 날이 갈수록 인터넷 세상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 사람들과 채팅도 하고, 게임도 하는데 나는 인터넷을 할 줄을 모르니 늘 언니 뒤에서 곁눈질만 해야 했다. 인터넷을 할 줄 모르는 것은 서러운 일이었다.


운전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일이 아니다. 우리 엄마 아빠 세대 분들이 최소한의 인터넷만 사용해도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불편함이 없는 것처럼, 굳이 할 필요가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나는 늘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막연히 부러웠고, 그들 옆에 가만히 앉아있는 게 미안하고 씁쓸했다. 운전을 할 줄 모르는 게 불편하다면 직접 운전을 해야 했다. 운전대를 잡은 지 1년이 지난 지금, 차를 살까 말까 고민했던 그때를 되돌아보면 차를 산 것이 조금도 후회되지 않는다. 내 옆자리 앉았던 대다수의 사람들(비운전자)은 운전하는 나를 보며 "나도 운전하고 싶다"라고 했다. 네가 하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드는 것이다. 그 말이 전혀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는다. 반대의 입장이었어도 나 역시 똑같은 생각을 했을 테니까. 당신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내게 운전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큰 벽이었다. 그래서 운전을 시작한 올해는 '아무리 큰 벽도 내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배운 한 해였다. 살면서 어떤 벽에 부딪치더라도 그렇게 무너뜨리면 그만일 것. 우리가 살면서 이루어내는 모든 것들은 그것 하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나를 무너뜨리면 도미노처럼 탄력을 받아 더 많은 것들을 무너뜨릴 힘을 갖게 되니까. 내년엔 또 무엇을 무너뜨려볼지 즐거운 거인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미 알아야 할 것은 다 알아버렸는지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