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첫 입사 날은 어떤 맛이었는가? 드라마 <미생>에서 영업 3팀에 입사한 장그래의 첫 입사 날은 불지옥의 맛이다. 평생 바둑만 두고 살아온 그는 온갖 스펙 장비를 갖춘 사람들로 가득한 원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에서 도저히 살아남기 어려워 보인다. 누구 하나 챙겨주는 이 없는 차디찬 벌판에서 뭐라도 자기 손으로 해보려 발버둥 쳐보지만 전화가 와도 온통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에, 동료들이 쓰는 말은 외계어나 다를 바 없는 전문 용어들뿐이다. 오 과장이 장그래에게 묻는다.
"나한테 너를 팔아봐. 네가 제일 자신 있는 게 뭐야?"
"노력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 안 사!"
살아본 적 없던 세상에 기어이 엉덩이를 들이미는 것. 장그래는 스물여섯이기라도 하지, 그때 나는 스물여덟이었다. 철 지난 아버지의 양복을 입은 장그래처럼, 나는 IT스타트업의 복장에 걸맞지 않은 오피스룩을 입고 첫 출근을 했다. 면접에서 이미 후리 하게 입고 출근해도 괜찮겠다는 인상은 있었지만, 첫날부터 너무 후리 하게 입고 갈 순 없어 블라우스에 굳이 잘 입지도 않는 검정치마를 입고 갔다. 그때부터 약 한 달간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긴 취업준비 기간 동안 패배감에 젖어 우울한 시간만 보내지 말고 포토샵이든 구글 문서든 어떻게 쓰는지만 알아뒀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싫진 않았을 텐데.
그런데 장그래 이 녀석, 나보다 나은 점이 있다. 에이스 인턴사원 안영이에게 체면도, 자존심도 없이 이것저것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살아본 적 없던 세상에 기어이 엉덩이를 들이밀어야겠다면 어쩌겠는가.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체면과 자존심까지 세우면 그때는 정말 답이 없는 것이다. 반면 나는 동료들이 모르는 전문용어를 쓰면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거의 1분에 한 번씩 모르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잠깐만요, 디버깅이 뭐예요?"라고 물을 수가 없었다. (*디버깅 : 오류 수정. 컴퓨터 프로그램의 잘못을 찾아내고 고치는 작업) 들리는 대로 적어두었다가 잊지 않고 검색이라도 해보면 다행이었다. 입사하고 한 달이 지났을 때쯤이었을까, 한 동료가 하는 말을 듣고 강력한 한 방을 맞았다.
"전 모르는데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그럼 어떡해요?"
모른다는 말을 어떻게 저렇게까지 당당하게 할 수가 있지? 솔직히 한동안은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그 동료 말 중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괜히 아는 척하다가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나는 것보단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게 낫다. 모른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답을 알려줄 것이고, 알려주는 이 없다면 어떻게든 답을 찾아오면 된다. 모르는 게 잘못이 아니라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게 잘못이다.
오 과장이 장그래를 안 사겠다고 말한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노력은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했었어야지, 회사에 들어오고나서부터 시작하기엔 늦었다는 뜻일 게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노력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 스펙을 쌓는 데 많은 노력을 들였지만 회사에 입사한 후 목표를 이루었다는 생각으로 노력을 멈추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야근이 코앞에 닥친 말단 사원이 쓰는 포토샵과 매일 졸린 눈 비비며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하는 포토샵은 같을 수 없다. 입사하기 전의 노력은, 입사한 후의 노력과 꼭 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이제는 어디 가서 내세우기 촌스러워진 '노력'.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몇몇 못된 사장님들 때문에 '노력'이라는 말의 가치가 '노오력'으로 오염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고 배우려 노력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 롱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장그래, 기죽지 말고 노력으로 당신을 열심히 팔아보기를. 그러니 오 과장, 사보기도 전에 노력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