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말들이 또 선을 넘는다. 나는 또 보란 듯이 해내서 보여줘 버린다. '환불원정대' 언니들의 똑 부러지는 외침이 나약해진 내 마음을 찌른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결성된 걸그룹, 환불원정대란 혼자 환불을 하러 가기 무섭고 두려울 때 든든하게 같이 가줄 법한 '센' 언니들을 말한다. 요즘에야 예전보다 환불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환불을 하러 가면 늘 점원 분과 묘한 기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래서 나 역시 환불을 하러 갈 때는 혼자보단 누군가와 같이 가고 싶었고, 웬만하면 감히 말 걸기 어려워 보이는 센 언니나 친구를 대동했다. 언니들은 나 대신 일처리를 해줌으로써 생색을 내기보다는 '봐, 세상은 이렇게 사는 거야'라며 무언의 인생 교육을 해주는 것 같았다. 완벽하고 철저한 눈빛에서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참지 않아', '어디 와서 싸구려를 팔아!' 등 세 보이는 환불원정대 노래 가사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은 '나도 사랑을 원해. 나도 평화가 편해’였다. 짙은 눈 화장에 가려진 순한 눈빛처럼, 독해 보이는 겉모습 속에는 싸움을 원치 않는 여린 마음이 있다. 부딪히는 일이 편한 사람은 없다. 사사건건 예민하게 구는 것보다 마음에 안 들어도 구렁이 담 넘듯 대충 넘어가는 일이 쉽고 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히는 이유는, 쉽고 편하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피해를 참고 넘어가는 일이 쌓이면 구렁이 담 넘듯 나의 권리를 빼앗기게 되기 때문이다.
동네 슈퍼 아주머니는 내가 동네에서 입고 다닐 법한 헐렁한 옷을 입고 가면 반말을 하시고, 퇴근하는 길에 오피스룩을 입고 가면 존댓말을 하신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그런 상황에 닥쳤을 때 상대방이 존댓말을 하면 똑같이 존댓말로 대답을 하고, 반말을 하면 반말로 대답을 하라는 팁을 알려주었지만 실생활에서 그렇게 하기는 쉽지가 않다. 물론 그 아주머니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시지만, 내가 다섯여섯 살 먹은 꼬마 아이도 아니고 어엿하게 서른을 넘긴 어른인데, 옷차림 따위 때문에 "3,000원~ 잘 가~"라는 묘하게 기분 나쁜 반말을 친분도 없는 분께 들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쉽고 편하다는 이유로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간 탓에 나는 여전히 헐렁한 옷을 입고 가면 불편한 반말을 듣는다.
왜 오피스룩을 입어야만 존댓말을 들을 수 있는 걸까. 내 지인은 딱 보기에도 첫인상이 참 순해 보여서 '착하다'는 평을 많이 받는데, 때로는 그 점 때문에 자신을 얕보는 사람들이 많아 힘들다고 했다.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착해 보이는 건 큰 장점처럼 여겨져 그 지인과 같이 순해 보이는 인상의 학생은 나와 똑같이 잘못을 했어도 그냥 넘어가는 반면, 내 날카로운 인상은 늘 '문제'가 되곤 했는데 세상은 어쩌다 이렇게 뒤집힌 걸까. <공부란 무엇인가>를 쓴 김영민 작가님의 말씀처럼, 착함이 곧 무능함의 동의어가 되어가는 이 현상은 한국 사회가 흘러가는 어떤 방향을 지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 됐건 겨우 동네 슈퍼에 갈 때도 이럴 진데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부당한 순간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좋게 좋게 넘어가는 순간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그만큼 좋아지는 게 아니라 당연해진다. 나는 한 번 꾹 참고 '좋게' 넘어갔지만 상대방에게는 '당연함'이 쌓이기 때문이다. 결국 억울한 상황은 또다시 발생하고 반복된다. 그럴 땐 "내 맘대로 해, Don't touch me"를 외치는 환불원정대 언니들을 떠올려 보자. 누구나 쉬운 평화를 원하는 그 순간에도, 일부러 불편한 상황에 뛰어들어 권리를 찾을 줄 아는 언니들처럼,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부당함은 잘라내 버리고, 내 동생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오기라도 한 날엔 과감히 이렇게 외치자고.
"거기가 어디야, 앞장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