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 빠져 있었을 때, 범죄자의 범죄 동기와 행동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프로파일러가 멋져 보였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단순히 넘겨버릴 법한 작은 단서들도 놓치지 않고 범죄자의 심리와 연결 지으며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런데 7-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국내 1위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는 그 이유를 “당시에는 사건의 동기가 뚜렷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옆집 김 씨가 돈을 빌려가 놓고 돈을 갚지 않거나 앞집 박 씨가 뒷집 최 씨와 오래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요즘처럼 길을 가다가 그냥 기분이 나빠서 처음 본 사람을 주먹으로 치는, 범행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일명 ‘묻지 마’ 범죄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 프로파일러가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주목받는 직업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건의 동기가 모호하고 불분명해졌다는 뜻이다. 길을 가다 이유 없이 주먹으로 얼굴을 두들겨 맞을 수도 있고, 더 운이 나쁘면 심지어 칼에 찔릴 수도 있다. “왜 그랬니?”라고 물어도 ‘그냥’이라거나 ‘어쩌다가’라는 안 들으느니만 못한 대답만 돌아온다. 범죄는 흉악하다는 점에서 같지만, 그 범죄를 저지르게 된 동기가 투명했던 때가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투명한 범행 동기는 우리를 모호한 두려움 속에 빠트린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멍 때림’과는 어딘가 다른 텅 빈 눈동자를 바라볼 때마다 어디를 바라보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나 스스로 길을 잃곤 했다. 그 텅 빔을 무어라고 설명하기가 참 어려워서, 어쩌면 그렇게 바라보는 내 시각이 나쁜 시각은 아닌지를 스스로에게 몇 번을 되물었다. 우리는 보통 어떠한 일이 발생했을 때, 일반적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상대방의 표정이나 행동에서 그 사람의 감정을 유추해볼 수 있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맞닥뜨렸을 때 소리를 지른다든지, 말이 빨라지고 더듬는다든지,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예측과 달리, 상대방이 아무 말이 없거나 하품을 하거나 사건이 벌어진 지점이 아닌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다면? 일반적인 예측이 불가해진다.
범죄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든 의도나 속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은 큰 공포다. 훤히 다 알 수는 없어도, 최소한의 정보를 알 수 있을 때 그에 맞는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전을 한 지 약 일 년 정도가 되었는데, 운전을 하면서 가장 불편한 것은 깜빡이를 켜지 않고 들어오는 차들이다. 깜빡이로 뒤차에 본인의 이동 경로를 미리 알려주어야 하는데, 언제 들어오겠다는 신호도 없이 일단 끼어들고 보는, 제 갈길만 가는 족들이다. 쌩-하고 앞질러 가버리는 그 차들은 마치 '내 갈 길을 묻지도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마!'라고 하는 것 같다.
묻지도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서로가 서로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세상이 되어버린다. 프로파일러가 아닌 우리 엄마도, 옆집 아이도, 눈빛만 보아도 서로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공유할 수 있었던 그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내가 이 글을 그냥, 어쩌다가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알아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