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능숙함과 관련이 없다

by 유수진

작년 이맘때쯤 문토에 글쓰기 모임 리더 신청을 했다. 마음 상담을 받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나쁜 습관을 끊기 위해 새로운 일에 뛰어들고 싶었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 나를 던져보고 싶은 막연한 욕구가 있었다. 카페에서 신청서를 넣던 그때 그 순간이 기억난다. 큰 의미가 있고 대단한 순간이어서가 아니라, 그 당시 나에겐 큰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기억이 난다. 연락이 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도 않았고, 연락이 오지 않더라도 실망스러울 것 같지도 않았다. 해가 뜰려면 뜨고 말려면 말라는 때였으니까.


며칠 후 회사에서 퇴근 직전에 문토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2020 버킷리스트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주5일 근무를 하고 주말마다 글쓰기 모임을 나가는 게 힘들지 않냐고 했다. 힘들었다. 안양에서 합정까지 나가는 길, 퇴근하고 틈틈이 모임 자료를 만드는 일 등. 작년의 나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들. 주말엔 침대에 누워 시체놀이를 해야 컨디션이 회복되는 사람. 여전히 나는 그런 사람이지만, 마음가짐은 몸을 바꾸었다. 마음가짐을 바꾼 건,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내 세상은 곧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가진 세상의 합이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 세상은 내 주변 사람들이 가진 것으로 유추해보았고, 그것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의 잘못된 것’으로 분류되어 나의 마음을 짓눌렀다.


‘인생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라고만 생각했던 나의 세상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다’라고 생각했던 나의 세상은, 탁하게 썩어 있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의 잘못된 것’으로 분류했던 것들을 그들도 똑같이 경험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치 피부의 일부로 받아들인 채 새 살을 만들어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나보다 더 어른답게 이겨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안도감을 얻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평소 잘 사지도 않는 맥주 4캔을 사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2020년은 내 생애 가장 바쁜 한해였다. 나쁜 습관을 잊기 위한 지극히 의도적인 바쁨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담배를 끊고 싶다면, 담배를 ‘태우지 않는’ 것보다는 ‘해야 할 다른 일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좋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큰 고민없이 저질렀고, 그러다 들어오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받았고, 받은 것은 무조건 해냈다. 능숙하지 않았고 모든 게 서툴렀지만 그 어느 때보다 미련이 없다. 잘 하진 못했어도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고, 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는 여전히 인사를 나누고,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을 기약한다. 마음은 능숙함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 수많은 모임 중에서도 글까짓거를 선택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


까짓 거, 글 한 번 써보자는 마음으로 지은 ‘글까짓거’라는 이름처럼, 그 사람들 덕분에 능숙하지 않은 내가 다음 해에 또 어딘가에 무작정 부딪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다음 해가 기다려지는 건, 서른 두 해 중 처음이다. 어떻게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믿음은 능숙함과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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