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 입주한 지 두 달이 흐르자 필수품들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았다. 냉동 볶음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을 때는 싱크대 첫 번째 서랍에 있는 랩을 꺼내어 그릇에 랩을 씌우고, 화장실에 두루마리 휴지가 떨어지면 화장실 바로 앞 서랍장에서 새 휴지를 꺼내 채워놓는다. 작업실에 종종 들르는 언니는 휴지가 당연히 화장실 안 서랍장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매우 당황했다고 하던데, 나는 그냥 화장실 앞 서랍장에 넣어두는 게 편해서 거기에 넣어둔다. 모든 물건은 최대한 내가 편한 자리에 놓아둔다.
작업실을 얻고 나서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나는 정말 인테리어에 관심이 1도 없다는 것이다. 본가에서 사는 동안에는 내 공간만 얻으면 예쁘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로 가득 채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1차원적 인간이었다. 심지어 언니가 매트리스를 대신 구입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1년 내내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을 것이고, 커피 포트를 사주지 않았더라면 집에서 써온 그대로 굳이 주전자를 사다 썼을 것이다.
어느 정도 작업실에 적응을 한 후, 친구들을 하나둘씩 작업실로 초대했다. 작업실에 와서 내 말동무를 해주는 것도 고마운데, 친구들은 고맙게도 집들이 선물을 하나씩 들고 와 주었고, 친구들이 방문하면 방문할수록 작업실에 사람 냄새가 더해졌다.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작업실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채워놓은 물건들이 몇 안 된다. 작업실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바꿔준 스탠드 조명, 작업실 안의 향기를 가득 채우는 디퓨저, 화장실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준 핸드워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더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예쁜 커피잔, 작업실 전체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피규어 등 하나하나 내 사람들의 손길이 묻어있다.
어쩌면 지금의 나도, 나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주변에 내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생활필수품으로만 채워진 작업실처럼, 살기 위해 사는 색깔 없고 무미건조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곁에 머물러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여행도 하며 내 삶을 다양한 색깔들로 채워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작업실을 채워준 고마운 선물들을 보며 생각한다. 작업실은 내가 얻었지만, 이 공간을 채워준 건 내 사람들의 온기라고. 몸은 내 몸이지만, 이 마음을 채워준 건 내 사람들이라고.
작업실의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 공간을 채운다. 비로소 사람 사는 집 같다.
(흑.. 집들이 선물 안 들고 와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