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에서 '벤'은 수십 년 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70세 노인이다. 매일 회사로 출근하는 삶을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출근할 곳을 잃으면 꽤 당황스럽다. 그래서 그는 매일 이른 아침마다 신문을 들고 스타벅스로 가 직장인들 틈에 끼어 하루를 시작한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 아침에 눈을 떠서 갈 곳이 필요해서다.
나는 요새 집에서 7분 거리에 있는 작업실로 매일 출근을 하고 있다. 벤처럼 은퇴를 한 건 아니고 원래는 삼성역에 위치한 회사로 출근하는 평범한 직장인인데, 올해 코로나로 인해 필요에 따라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나의 근무지가 변경이 된 것이다. 작업실 구하기의 원래 목적은 작가로서 더 많은 글을 쓰기 위함이었지만,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출근할 곳을 만들겠다는 목적도 아주 크게 작용했다. 올해 상반기에 코로나가 심했을 당시 약 두 달간 재택근무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바로 생활과 일이 분리가 안 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나가는 것이 귀찮았는데, 막상 집에서 일을 하니 열 걸음 걸어 식탁에서 밥을 먹고 또 열 걸음 걸어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자주 뒷산에 오르기도 했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잠옷을 입고 노트북에 앉으면 자꾸 침대에 누워서 일하고 싶어졌다. 방 안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다 보니 무기력해지고 자주 두통을 느끼기도 했고.
프리랜서로 살면 어떨까 상상해본 적이 있는데, 현재의 집에서라면 나의 일상이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일을 해도 일하는 것 같지 않고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살게 될 게 분명했다. 물론 프리랜서로 잘 살기 위해서 꼭 작업실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소개한 <인턴>의 주인공, 벤처럼 카페에서 업무를 보거나 요즘과 같이 카페에 가기 어려울 때에는 나만의 규칙적인 루틴을 여러 개 만들어 생활과 일을 분리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평일 중 하루는 본가에서 작업실로 출근해 근무를 하고 작업실에서 잔다. 그리고 그다음 날 오후에 다시 본가로 간다. 이 과정을 평일 동안 반복하는데, 확실히 주 5일 내내 집에서 일을 할 때보다 하루 스케줄을 알차게 쓰게 된다. 점심에는 일부로라도 가까운 김밥집이 아닌 더 먼 김밥집에 가서 김밥을 사 오고, 가까운 지름길보다는 먼 길로 돌아온다. 가급적 하루에 5,000보 이상 걷기 위해서다. 작업실에서 작업을 할 때에도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기 위해 1시간 단위로 작업의 종류를 바꿔주고,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하거나 잠깐 유튜브 영상을 보며 의도적으로 나른해지는 분위기를 끊어준다.
재택 근무지만 아침에는 메이크업도 한다. 화상 회의를 하면 맨얼굴이 잘 안 보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보여서 한다. 처음엔 내가 유난이라고 생각했는데, 메이크업을 하면 노트북 앞에 앉는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건 사실이다. 부자가 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개기'라고 하던데, 주식 공부보다 그것이 훨씬 쉬운 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