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겨보고 있는 유튜브 '에일린 mind yoga'에서 '생리 기간이거나 에너지가 낮을 때 하기 좋은 요가' 편을 틀었다. 본격적으로 요가를 시작하기 전,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생리 기간에는 예민해지기 쉽고 무기력해지기 마련이에요. 이 시기를 그저 귀찮거나 불편한 기간이라고만 여기면 그냥 힘들기만 할 거예요. 하지만 이런 시기에 좋은 점은, 몸이 굉장히 예민한 상태이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기보다는 오롯이 내 몸과 마음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시기를 잘 이용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에게 생리 기간은 평생 '귀찮고 불편한 기간'이었다. 중학교 소풍을 앞둔 어느 날, 종교가 없는 나는 처음으로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 제발 소풍날과 생리 기간이 겹치지 않게 해 달라고. 살면서 그렇게 간절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 어린 날의 나에게 그것은 너무도 중대한 사안이었다. 1년 중 2번 갈까 말까 한 소풍날에 생리 기간이 겹친다는 건, 한 마디로 그 소풍은 망했다는 뜻이었으니까.
수학여행을 갈 때, 운동회 할 때, 시험을 볼 때,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 회사에서 출장 갈 때 등 중요한 일이 있거나 바깥 활동을 할 때 생리 기간이 겹치지 않도록 늘 일정 조율에 신경을 써야 했다. 누군가 "12월 1일에 여행 갈래?"라고 하면 "와! 좋아!"라고 외치면서 속으론 날짜를 세고 있었다. 내가 이토록 예민하게 신경을 쓴 건, 통증이 심한 편이어서인 점도 있었다. 생리통 때문에 몇 차례 정신을 잃어본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생리 기간에 멀리 나갈 일이 있으면 엄마와 언니는 걱정부터 앞섰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리통과 친해진(?) 후로 생리통을 좀 더 똑똑하게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이 기간에는 바깥 활동이 자유롭지 않고, 평소보다 더 우울감을 느껴도 금세 지나갈 것임을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잘 알게 되었으니 그 기간 동안에는 외부 약속은 가급적 잡지 않고,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바깥 활동을 하느라 지친 심신을 달래고, 글도 많이 쓰고, 침대에 누워 드라마 정주행도 한다.
어쩌면 이것은 현재 코로나 상황과도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일상의 많은 부분을 잃었고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다 같이 힘을 합쳐야 하는 이 시점에, 스키장은 사람들로 들끓고 단체 모임도 서슴지 않는다. 나 역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의 모임이 몇 차례 엎어지기를 반복하고, 좋아하는 합정 카페에서 수다를 떨어본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아 서글프다. 그러나 생리 기간을 그저 귀찮고 불편한 기간이라고만 생각하면 그냥 힘들기만 하듯이, 코로나 기간도 불편한 상황이라고만 생각하면 참기 힘들기만 할지도 모른다.
나는 시나리오 책을 펼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해야지, 해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있었던 일인데 불가피하게 작업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니 지금 시작하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앞에서 말한 요가 유튜브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 후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알게 된 채널이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줘서 요가를 하지 않는 시간에도 자주 틀어놓는다. 30년 가까이 원수 지간처럼 지내온 영어 공부도 제대로 시작했다. 나도 10대 때 유튜브로 영어 공부했으면 더 잘했을 텐데, 하고 생각만 해본다. 집에 있을 때는 화장실 문에 설치해둔 철봉을 가끔씩 한다. 아빠가 철봉을 설치할 때는 흉측하게 이런 걸 왜 설치하냐고 투덜댔는데 바깥 운동을 하기 어려운 요즘, 근력 기르기에 참 좋다.
그래도 심심한 순간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당신은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는 일상을 어떻게 채워나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많은 대화가 필요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