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이 있는 오피스텔 8층에서 1층으로 내려와 분리수거를 하고,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을 때 한 남자가 오피스텔 입구로 들어섰다. 내가 내려가는 버튼을 누른 줄 모르고 같이 탔다가 "어? 내려가네?" 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들릴 듯 말듯하게 "저..내려가는 건데.."라고 했지만 남자는 미동이 없었다.
저분도 내려가는 거겠지, 하고 별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지하 3층 버튼을 눌렀는데 남자가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오피스텔 주차장이 지하 3층까지 있는데, 보통은 지하 1층이나 2층에 차를 세워두어도 될 만큼 주차 공간이 넉넉하다. 최근에 혼자 기둥에 차를 긁어먹은 후로 조심성이 최고조에 달해 지하 3층에 주차를 해둔 것이지, 보통 지하 3층까지 내려가지 않는다.
'뭐야... 왜 버튼을 안 누르는 거야...'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왔다. 각종 범죄 영화의 장면들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본 엘리베이터 사건들이 떠오르면서, 1층에서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마주친 사람과 같이 지하 3층에 내려갈 확률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지하 3층으로 내려왔고, 남자는 나보다 더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 자리에 잠시 멈추어 섰고, 그 남자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았다. 혼자만의 망상이 민망하리만큼 남자는 재빨리 한 차의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작업실을 얻기 전 가장 걱정했던 것은 안전이었다. 먼저 자취를 시작한 친구는, 어떤 사람이 집의 비밀번호를 마구 눌러서 순간 패닉에 빠졌던 적이 있다고 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안에서 칼을 움켜쥔 채 벌벌 떠는 것뿐이었는데 다행히 옆집 사람이 집을 착각한 해프닝이었다고. 또 한 지인은 실제로 스토킹을 경험해 경찰에까지 신고를 했는데 정확한 증거가 없어서 가해자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히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사건인 줄만 알았는데 내 주위에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내가 과하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낯선 사람과 폐쇄된 공간에 있을 때면 습관적으로 나가는 문 쪽에 서 있었고, 종종 혼자 여행을 갈 때엔 숙박 주인이 하나의 열쇠를 더 갖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리뷰가 많이 쌓인 숙박 업체에 가거나 호텔을 이용했다. 때로는 이런 내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동안 내가 다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직·간접적 사건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 지인 분은 밤길에 누군가와 같은 방향으로 길을 걷게 되면 일부러 앞질러 간다고 했다. 자신이 뒤에 있으면 앞에 가는 분이 불안할 테니 차라리 얼른 앞질러 가는 게 본인의 마음도 편하다고. 앞에 있건, 뒤에 있건 어두운 밤길에 동행이 있어 든든한 마음이 든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러고 보니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분도 정말 쏜살같이 차를 타고 나가셨는데, 어쩌면 뒤에서 불안해하고 있던 나를 위한 죄송하고 감사한 배려였을지도 모르겠다.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마케터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 일글레 구독 신청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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