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구하고 굳이 '작업실'이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 공간을 내가 왜 얻었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기억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자취까지 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가장 큰 이유는 첫 번째 이유 때문이었는데, 내가 작업실이라고 부르니 주변 사람들도 이곳이 마치 집이 아니라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공방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 나는 다양한 작업을 한다. '글쓰기'가 주 작업이고, 지난 가을에는 한 평생교육관에서 글쓰기 교육 영상을 촬영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강의 자료를 준비하는 작업도 했다. 만약 그때 작업실이 없었다면 감히 8회차 분량의 자료를 어떻게 준비하고 강의 연습을 했을까 싶다. 가족들이 있는 집에서 연습했을 생각을 하니 벌써 손발이 다 없어지는 것 같고. 작업이냐 아니냐가 '돈'을 기준으로 나뉘어진다면 지금까지 한 작업은 회사 일을 제외하곤 그것뿐이지만, 내 기준에 작업이란 돈이 나오고 안 나오고의 문제만은 아니다.
재택 근무를 하고 있는 요즘엔 매일 아침 9시쯤 본가에서 출발해 9시 20분쯤 작업실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차를 한 잔 내려 마시면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할 준비 작업을 마친 셈이다. 그러면 회사 업무를 시작하는 오전 10시 전까지 약 30분 가량 시간이 남는데, 이 30분은 하루 중 가장 최고조로 머리가 맑은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그날 가장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데, 유튜브로 영어 공부를 하기도 하고 영상 편집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쌓는 작업을 한다.
일을 하다 지칠 때면 리프레쉬를 위해 창문 밖을 보며 긴장을 푸는 작업도 한다. 본가는 아파트 1층이라 '뷰'라고 할 것이 없는데 10년 넘게 살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일이 없는 것은 좋았지만 뷰를 즐길 수 없다는 것이 늘 아쉬웠다. 반면 작업실 앞엔 큰 사거리가 있어 차량이 많이 다니는데, 왠지 차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이 된다. 규칙적으로 4개의 신호등이 사이좋게 시간을 나누어 바뀌고, 사람들이 횡단 보도를 건널 땐 그 앞에 차들이 하나하나씩 쌓여가는 것을 보는 게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요즘 '불멍(불을 보며 멍을 때리는 일)'이나 '물멍(어항을 보며 멍을 때리는 일)'이 유행이라는데, 나는 작업실에서 할 수 있는 '차멍'만한 게 없다.
조금 더 작업다운 작업도 한다. 이를 테면 이 작업실을 구한 가장 큰 목적인 '드라마 대본 쓰기'를 위해 다른 작가님들의 대본집을 필사하는 일이라든지, 시나리오 관련 책을 읽고 좋은 문장들을 챙겨두는 일이다. 안 하던 일을 하려니 아직 적응이 안 돼서 낯설지만 언젠가는 이 작업도 몸에 밴 일처럼 좀 더 능숙해지고 편안해질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무슨 작업을 하는 작업실이에요?"라고 묻는다면 명확히 한 문장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글을 쓰는 곳이라고 하기엔 멍 때리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고, 연말이라는 핑계로 1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친구를 불러 얼굴이라도 보는 용도로 더 자주 쓰이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작업실이라는 어감이 누워 있기보다는 앉은 자세를, 텔레비전을 보기보다는 하얀색 문서 창을 바라보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갖게 해주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창밖을 보며 멍만 때리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또 어떤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볼까 나름 궁리중이라는 변명을 길게도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