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진 Dec 19. 2020

청소비 10만 원과 첫 부동산 계약

‘직방’으로 괜찮은 집을 알아보고, 부동산에 전화를 걸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혼자 보러 가도 되는지, 방을 보고 괜찮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해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몰랐으니 말이다. 몇 차례 부동산 사장님과 약속 시간을 잡고 두세 군데 정도 방을 보고 돌아다녀보니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기는 한데 확 마음이 끌리는 방이 없었다. 처음 생각해두었던 카페거리 앞 오피스텔을 보러 갔을 땐 낭만적인 외부와는 달리 담배에 찌든 내부 벽지를 보고 질색팔색 하며 도망 나왔다.


잠시 손을 놓고 있던 차에 생각지도 않았던 위치에 좋은 매물을 발견했다. 한 위치에만 꽂혀있었던 나머지, 더 좋은 위치에 있는 집을 알아볼 생각도 안 했던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고 찾아간 집은 신축 건물로 외부도, 내부도 모두 깨끗한 데다 가격도 이전에 본 집보다 저렴했다. 전에 살던 분은 승진을 하셨는지 방에 ‘승진 축하합니다’라는 축하 메시지가 적힌 꽃다발이 걸려 있었는데 그것마저 느낌이 좋은 집이었다. 부동산 사장님 앞에서 너무 마음에 들어하는 티를 내면 안 된다는 소문을 듣고 갔지만 이미 내 광대는 승천해있었고, 이 집의 자랑 거리를 쉴 새 없이 쏟아내던 부동산 사장님은 입주하기 전에 청소까지 싹- 해줄 테니 다른 사람이 채 가기 전에 어서 가져가라고 했다.


당장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해도 될 만큼 마음에 들었지만 며칠 더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부터 유튜브로 ‘부동산 계약 시 주의할 점’을 검색해 영상들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요즘 세상에 작은 월세방 하나 구하면서 사기당할 일이 있겠냐마는 각종 전문 용어가 쏟아지니 겁이 났다. 집주인의 주민등록번호나 집 정보가 계약서에 정확히 기입되어 있는지 확인하라는 등 몇 가지 체크해야 할 것들을 포스트잇에 적어두었다. 정말 누가 먼저 그 집을 채갈까 봐 3일도 지나지 않아 부동산 사장님께 다시 연락을 했고, 계약을 하기 전 다시 한번 집을 보고 싶어 재방문을 하기로 했다.


집을 구하는 일이 골치 아픈 일이라는 것을 느낀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다시 집을 둘러보고 나와서 내가 계약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부동산 사장님은 180도 태도를 전환하며 10만 원의 청소비를 내고 청소를 한 다음에 입주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집이 전체적으로 깨끗한 편이긴 하지만 전에 살던 사람의 자취 상태를 보니 전문적인 청소가 필요해 보이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에 살던 사람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난번 방문 때에는 입주하기 전에 청소를 싹- 해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조목조목 따지니 사장님은 이전에 살던 사람은 청소비에 대한 조건이 없었지만 이번부터 청소비의 조건이 추가됐다면서, 내가 입주할 때 청소비를 내고 깨끗한 상태에서 사는 것이 좋지 않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실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려고 했다. 어쩜 이렇게 사람이 한순간에 변하는지, 역시 사회는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코가 베이는 곳이었다. 그럴 바에야 치사해서 안 하고 말겠다는 주의인 내가 계약을 포기하려고 할 때쯤, 지원군으로 데려간 언니가 나를 붙잡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고작 이 정도의 트러블로 놓치기엔 아까운 공간이었다. 청소비 10만 원은 계약이 끝날 때 지불하고 입주 청소는 약속한 대로 집주인 측에서 해주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트러블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집주인 분과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로 한 날, 약속한 오후 12시쯤 부동산에 갔더니 부동산 사장님은 그제야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집주인 분께는 미리 약속 시간을 전달하지 않은 것이다. 일단 한 번 참고 기다렸는데 집주인 분이 저녁때나 집에 오실 거라고 저녁때 다시 만나자고 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전혀 모르는 듯한 눈치의 사장님과 더 이야기를 나누어봤자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내 평생 가장 큰 계약을 앞두고 최대한 침착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한 걸음 뒤로 물러 서서 저녁에 다시 만나 최종 계약을 끝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작업실의 세계로 들어가면  공간을 갖기까지 지나온 수많은 고비들이 한순간의 꿈처럼 느껴진다. 내년, 계약이 끝날 때쯤 냉혹한 현실이 다시 찾아오청소비 10 원의 혹독함을 잊지 말아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이곳은 '없는 게' 인테리어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