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방’으로 괜찮은 집을 알아보고, 부동산에 전화를 걸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혼자 보러 가도 되는지, 방을 보고 괜찮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해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몰랐으니 말이다. 몇 차례 부동산 사장님과 약속 시간을 잡고 두세 군데 정도 방을 보고 돌아다녀보니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기는 한데 확 마음이 끌리는 방이 없었다. 처음 생각해두었던 카페거리 앞 오피스텔을 보러 갔을 땐 낭만적인 외부와는 달리 담배에 찌든 내부 벽지를 보고 질색팔색 하며 도망 나왔다.
잠시 손을 놓고 있던 차에 생각지도 않았던 위치에 좋은 매물을 발견했다. 한 위치에만 꽂혀있었던 나머지, 더 좋은 위치에 있는 집을 알아볼 생각도 안 했던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고 찾아간 집은 신축 건물로 외부도, 내부도 모두 깨끗한 데다 가격도 이전에 본 집보다 저렴했다. 전에 살던 분은 승진을 하셨는지 방에 ‘승진 축하합니다’라는 축하 메시지가 적힌 꽃다발이 걸려 있었는데 그것마저 느낌이 좋은 집이었다. 부동산 사장님 앞에서 너무 마음에 들어하는 티를 내면 안 된다는 소문을 듣고 갔지만 이미 내 광대는 승천해있었고, 이 집의 자랑 거리를 쉴 새 없이 쏟아내던 부동산 사장님은 입주하기 전에 청소까지 싹- 해줄 테니 다른 사람이 채 가기 전에 어서 가져가라고 했다.
당장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해도 될 만큼 마음에 들었지만 며칠 더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부터 유튜브로 ‘부동산 계약 시 주의할 점’을 검색해 영상들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요즘 세상에 작은 월세방 하나 구하면서 사기당할 일이 있겠냐마는 각종 전문 용어가 쏟아지니 겁이 났다. 집주인의 주민등록번호나 집 정보가 계약서에 정확히 기입되어 있는지 확인하라는 등 몇 가지 체크해야 할 것들을 포스트잇에 적어두었다. 정말 누가 먼저 그 집을 채갈까 봐 3일도 지나지 않아 부동산 사장님께 다시 연락을 했고, 계약을 하기 전 다시 한번 집을 보고 싶어 재방문을 하기로 했다.
집을 구하는 일이 골치 아픈 일이라는 것을 느낀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다시 집을 둘러보고 나와서 내가 계약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부동산 사장님은 180도 태도를 전환하며 10만 원의 청소비를 내고 청소를 한 다음에 입주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집이 전체적으로 깨끗한 편이긴 하지만 전에 살던 사람의 자취 상태를 보니 전문적인 청소가 필요해 보이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에 살던 사람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난번 방문 때에는 입주하기 전에 청소를 싹- 해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조목조목 따지니 사장님은 이전에 살던 사람은 청소비에 대한 조건이 없었지만 이번부터 청소비의 조건이 추가됐다면서, 내가 입주할 때 청소비를 내고 깨끗한 상태에서 사는 것이 좋지 않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실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려고 했다. 어쩜 이렇게 사람이 한순간에 변하는지, 역시 사회는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코가 베이는 곳이었다. 그럴 바에야 치사해서 안 하고 말겠다는 주의인 내가 계약을 포기하려고 할 때쯤, 지원군으로 데려간 언니가 나를 붙잡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고작 이 정도의 트러블로 놓치기엔 아까운 공간이었다. 청소비 10만 원은 계약이 끝날 때 지불하고 입주 청소는 약속한 대로 집주인 측에서 해주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트러블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집주인 분과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로 한 날, 약속한 오후 12시쯤 부동산에 갔더니 부동산 사장님은 그제야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집주인 분께는 미리 약속 시간을 전달하지 않은 것이다. 일단 한 번 참고 기다렸는데 집주인 분이 저녁때나 집에 오실 거라고 저녁때 다시 만나자고 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전혀 모르는 듯한 눈치의 사장님과 더 이야기를 나누어봤자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내 평생 가장 큰 계약을 앞두고 최대한 침착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한 걸음 뒤로 물러 서서 저녁에 다시 만나 최종 계약을 끝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작업실의 세계로 들어가면 이 공간을 갖기까지 지나온 수많은 고비들이 한순간의 꿈처럼 느껴진다. 내년, 계약이 끝날 때쯤 냉혹한 현실이 다시 찾아오면 청소비 10만 원의 혹독함을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