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내가 옷을 고르고 입는 시간은 평균 20분 정도였다. 잠에 들기 전에 다음날 입을 옷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거나 기분이 최악인 날에는 30분 이상도 걸리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게 패션쇼(?)를 하냐고 했다. 그만큼 옷에 민감하고 옷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옷이 많은 게 가장 큰 이유다. 옷이 별로 없다면 옷을 고르는 데 걸리는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옷장 문이 닫혀본 지가 언젠지 모를 만큼 내가 가진 옷은 항상 too much였다.
예상했겠지만 이것은 옷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가 내 방에 들어온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신고할까 봐 무서울 정도다. 정리정돈에는 소질이 없고 한 번 내 손에 들어왔던 물건을 버릴 때 많이 주저하는 편이다. 언젠가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반, 그래도 나의 녀석이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 반이다. "오늘 내가 싹 다 버린다!" 큰소리치고 대청소를 시작해서 고작 두 주먹에 들어오는 양만 버린 날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작업실을 구했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본인들이 더 설레어하며 어떻게 인테리어를 할 거냐고 물었다. 공간을 구하느라 인테리어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이런저런 인테리어 사진들을 찾아본 것 같다. 북유럽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집도 좋아 보이고, 각종 귀여운 문구들이 가득한 집도 좋아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다 내가 원하는 공간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예쁜 집보다는, 평생의 내 습관이었던 '맥시멀리즘'을 벗어나 최소한의 것만 갖추고 사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해보고 싶었다.
지금 작업실이 생긴 지 세 달째가 되어가고 있지만 작업실에 물건이 많지 않다. 예를 들면 포크가 없다.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먹다 보면 포크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는데 그 후로 포크를 사다 놓을 여유가 충분했음에도 굳이 포크를 구매하지 않고 있다. 포크가 없으면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사용해도 되기 때문이다. 여벌 옷은 딱 한 벌 정도만 둔다. 종종 작업실에서 잠을 잘 때가 있어서 다음날 집에 갈 때 입을 트레이닝 복뿐이다. 옷을 많이 갖추기 시작하다 보면 옷장 문이 닫히지 않는 건 시간문제일 게 뻔하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요즘엔 매일 아침 9시쯤 집에서 작업실로 출근한다. 작업실에 도착해 환기시키고 커피를 끓이는 약 10분의 시간이 지나면 바로 작업에 몰두한다. 집이었다면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도 한 번 보고, 틀어놓은 TV도 보고, 옆에 있는 책도 펼쳐보고, 어질러놓은 주변 물건들을 치우고 나서야 작업을 시작했을 텐데 그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내가 이만큼 빠르게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불필요한 것을 최대한 덜어낸 ‘있을 것만 있는’ 공간이 나에게 가장 적합한 작업 공간이기 때문 아닐까.
요즘엔 옷을 입는 데 걸리는 시간이 3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때로는 똑같은 바지를 5일도 입는다(물론 작업실에선 편한 바지로 갈아입는다). 요즘은 10벌의 바지 중 1벌의 바지를 고심해 선택하는 것보다 어제 입었던 바지를 똑같이 입고서라도 빨리 작업실로 출발해 재미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