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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Dec 31. 2020

내년엔 인스타그램을 끊어보겠습니다

학창 시절에 신발주머니보다  소중히 챙겨 준비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얼음물. 바야흐로 1990년대 시절엔  생수통에 보리차를 넣고 얼린  그것을 챙겨 학교에 다녔다. 더운 여름엔  말고도 물을 얼려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나의 얼음 사랑은 계절을 따지지 않았다. 깡깡 얼은 얼음을 의자 다리에 쾅쾅 부딪혀 부셔 먹으면 그것만  별미가 없었다. 얼음을 부수는 소리가 엄청 크기 때문에 가급적 쉬는 시간에만 얼음을 부셨지만, 정말 참을  없이 얼음이 먹고 싶을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 몰래(?) 얼음을 부셔 먹었다.


그러니까, 나는 얼음 중독이었다. 가족들은 내 이가 상할까 봐 얼음 좀 그만 먹으라고 했지만 시원하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얼린 얼음을 다 먹고 새로 얼려둔 얼음이 다 얼기까지 참을 수 없어 덜 얼은 얼음을 꺼내 먹을 정도였다. 성인이 돼서야 그것이 철분 부족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 그걸 알았다고 하더라도 중독 현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다. 자칭 절제력 상위 10%라고 생각하는 내가, 평생 중 가장 끊기 어려웠던 게 얼음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얼음을 끊었다. 어떠한 계기도 없이, 그냥 문득 일어난 일이었다. 추운 겨울이 되니 차가운 것에 손이 가지 않았다. 어라?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습관처럼 얼음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다음부턴 얼음에 손이 가지 않았다. 수족냉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고 이는 여전히 튼튼한데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사라진 얼음 중독 대신 생긴 중독은 SNS 중독이었다.


여러 순기능을 배제할 순 없지만, 적정 사용 시간을 넘어서는 순간 SNS는 역기능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심심풀이 땅콩으로 인스타그램(페이스북)을 보는 것을 넘어, 눈은 다른 곳을 보면서 손은 습관적으로 피드를 넘기고 있었다. 처음엔 만나기 어려운 지인(혹은 유명인)들의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은 TMI 소식까지 접하면서 과부하가 걸렸고,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준 사람에게 나는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으면 너무 야박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닌가 하며 아무도 모를 혼자만의 죄책감을 안았다. 무엇보다 중간중간 질 낮은 콘텐츠나 원치 않는 광고가 끼어져 보이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을 끊은 지 3일을 넘겼다. 다른 앱을 실행하려다 실수로 누른 것, 누군가 내 게시물에 계속 좋아요를 누르길래 누구인지 궁금해서 들어가 본 정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인스타그램 세상에 푹 빠져 살 때에 비하면 큰 변화인데, 엄청난 결단을 내렸다기보다는 얼음을 끊은 것처럼 문득 일어난 일에 가깝다. 내 일상 속에서 기록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때마다 사진을 찍어 올리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중독적 사용을 완전히 멈출 때까지 이 금단 현상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영어공부 앱을 깔았다. 습관적으로 어떤 앱을 실행시키고 싶을 때마다 누를 게 필요해서다. 다행히 내 머리는 인스타그램 대신 영어교육 앱을 눌러도 크게 반항하지 않는, 여전히 착한 아이다.

영어교육 앱만 깔면 될 것을. 중독은 우연한 기회로 끝이 나고, 그 감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반드시 있다. 그게 무엇이라도.



여러분은 2021년에 끊고 싶은 습관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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