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신발주머니보다 더 소중히 챙겨 다닌 준비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얼음물. 바야흐로 1990년대 시절엔 빈 생수통에 보리차를 넣고 얼린 뒤 그것을 챙겨 학교에 다녔다. 더운 여름엔 나 말고도 물을 얼려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나의 얼음 사랑은 계절을 따지지 않았다. 깡깡 얼은 얼음을 의자 다리에 쾅쾅 부딪혀 부셔 먹으면 그것만 한 별미가 없었다. 얼음을 부수는 소리가 엄청 크기 때문에 가급적 쉬는 시간에만 얼음을 부셨지만, 정말 참을 수 없이 얼음이 먹고 싶을 땐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 몰래(?) 얼음을 부셔 먹었다.
그러니까, 나는 얼음 중독이었다. 가족들은 내 이가 상할까 봐 얼음 좀 그만 먹으라고 했지만 시원하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얼린 얼음을 다 먹고 새로 얼려둔 얼음이 다 얼기까지 참을 수 없어 덜 얼은 얼음을 꺼내 먹을 정도였다. 성인이 돼서야 그것이 철분 부족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 그걸 알았다고 하더라도 중독 현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다. 자칭 절제력 상위 10%라고 생각하는 내가, 평생 중 가장 끊기 어려웠던 게 얼음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얼음을 끊었다. 어떠한 계기도 없이, 그냥 문득 일어난 일이었다. 추운 겨울이 되니 차가운 것에 손이 가지 않았다. 어라?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습관처럼 얼음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다음부턴 얼음에 손이 가지 않았다. 수족냉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고 이는 여전히 튼튼한데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사라진 얼음 중독 대신 생긴 중독은 SNS 중독이었다.
여러 순기능을 배제할 순 없지만, 적정 사용 시간을 넘어서는 순간 SNS는 역기능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심심풀이 땅콩으로 인스타그램(페이스북)을 보는 것을 넘어, 눈은 다른 곳을 보면서 손은 습관적으로 피드를 넘기고 있었다. 처음엔 만나기 어려운 지인(혹은 유명인)들의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은 TMI 소식까지 접하면서 과부하가 걸렸고,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준 사람에게 나는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으면 너무 야박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닌가 하며 아무도 모를 혼자만의 죄책감을 안았다. 무엇보다 중간중간 질 낮은 콘텐츠나 원치 않는 광고가 끼어져 보이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을 끊은 지 3일을 넘겼다. 다른 앱을 실행하려다 실수로 누른 것, 누군가 내 게시물에 계속 좋아요를 누르길래 누구인지 궁금해서 들어가 본 정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인스타그램 세상에 푹 빠져 살 때에 비하면 큰 변화인데, 엄청난 결단을 내렸다기보다는 얼음을 끊은 것처럼 문득 일어난 일에 가깝다. 내 일상 속에서 기록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때마다 사진을 찍어 올리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중독적 사용을 완전히 멈출 때까지 이 금단 현상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영어공부 앱을 깔았다. 습관적으로 어떤 앱을 실행시키고 싶을 때마다 누를 게 필요해서다. 다행히 내 머리는 인스타그램 대신 영어교육 앱을 눌러도 크게 반항하지 않는, 여전히 착한 아이다.
영어교육 앱만 깔면 될 것을. 중독은 우연한 기회로 끝이 나고, 그 감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반드시 있다. 그게 무엇이라도.
여러분은 2021년에 끊고 싶은 습관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