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를 시작한 이후 매일 아이폰 건강 앱을 들여다보고 있다. 하루 동안 몇 걸음이나 걸었는지 체크하는 것인데, 재택근무를 시작하기 전인 2019년에 비해 2020년의 평균 걸음 수가 줄어들었고, 2020년에 비해 2021년의 걸음 수는 더 줄어들었다. 재택근무를 하기 전에는 안양에서 서울까지 출퇴근을 하는 것만으로도 최소 7,000 ~ 8,000 걸음을 걸었는데, 재택근무를 하고 나서는 각 잡고 운동을 하러 나가는 것이 아닌 이상 동네 산책만으로 5,000 걸음을 걷기도 힘들었다.
등산도 자주 하고 학의천을 따라 걷기도 하며, 나름 건강에 많이 신경을 쓰는 나로서도 재택의 기간이 길어지니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일부러라도 점심은 더 멀리 있는 음식점에서 포장해오겠다고 다짐했지만 날씨가 춥다는 핑계로 집에 있는 음식으로 대충 때우기 일쑤고, 틈틈이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려고 해도 3시간 가까이 같은 자세로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2주에 한 번, 작업실로 친구를 초대해 한바탕 수다를 떨고 이틀을 앓아누워있는 나에게 누군가 "젊은 애가 다 늙은 사람처럼 왜 그러냐"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이유는, 사실 이틀을 앓아누워있을 만큼 내 체력이 저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점점 떨어지는 체력보다는 정신마저 늙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도) 이제 서울 나들이는 못 갈 것 같아'
'내가 어떻게 맨날 안양에서 서울까지 출퇴근을 했을까?'
'(오랜만에 잡은) 주말 약속 취소하고 그냥 쉴까...'
몸은 정신을 지배하고 정신은 몸을 지배한다. 사는 게 참 힘들다는 생각으로 산을 올라도,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에는 그 어느 때보다 의욕이 넘친다. 하루에 1,000 걸음도 걷지 않으면 다리가 아파서 억지로 산책을 하러 갔다가 무리를 지어 멋지게 러닝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다음엔 나도 예쁜 나이키 운동복을 풀세트로 사서 러닝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 마음이 3일을 채 가지 못하는 걸 알기 때문에 3일이 지날 때쯤 또다시 충격 요법을 주려고 산에 오르거나 러닝을 하는 사람들을 보러 나간다. 3일이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충격 요법을 주지 않으면 그 마음을 회복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수영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격렬하게 몸을 움직여 진을 뺀 뒤에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수영장 문을 열고 나와 시원한 바깥공기를 들이마실 때의 개운함은 비교할 만한 게 없다. 같은 레인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별 거 아닌 일로도 웃음꽃이 피어난다. 운동하는 사람들 특유의 긍정성과 에너지는 금세 전염되는 법이다. - 이영미, <마녀 체력> 중에서
<마녀 체력>을 쓴 이영미 작가의 말처럼, 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다. 평소에 나 따위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도, 운동을 한 날엔 나라고 못할 것도 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세상에 업적을 남긴 대다수의 경영인이나 예술가들이 매일 아침에 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보면, 운동을 함으로써 발산되는 자신감이야말로 목표를 이루게 하는 불쏘시개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20대 때의 나는 마른 몸을 갖고 싶어 음식 조절과 운동을 했고, 지금도 XXkg을 넘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운동을 하지만, 운동을 하는 세 가지 이유가 더 생겼다. 첫째는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 둘째는 그 일을 더 오래 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일들을 막는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게 생각하면 매일 아이폰 건강 앱이 보여주는 것이 비단 걸음 수만은 아닐 것이다. 내 자신감과 미래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면 건강 앱을 켜고 들쭉날쭉한 그 그래프를 살펴보는 방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