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직장에서 1년을 근무하고 처음으로 동료 피드백을 받던 날, 별로 떨리지 않는 척했지만 엄청 떨리는 마음으로 문서를 열었다. 빠르게 스크롤을 내려 객관식 점수를 훑어보니 거의 100점이나 다를 바 없는 높은 점수였다.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인 데다 유일한 뉴페이스였기 때문에 관심과 집중을 한 몸에 받았던 때였다. 실제로 일을 잘 해낸 성과도 일부 있었겠지만 '신입사원' 치고 잘했다,며 예쁘게 봐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스크롤을 끝까지 내려서 마지막 주관식 문항을 읽는데, 어떤 분께서 다른 글에 비해 아주 긴 피드백을 적어주셨다. 익명이라 누가 적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량만 봐도 글쓴이가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가 회사에서 가장 존경하고, 일을 잘하는 선배였다. 나에게 그 정도로 애정을 갖고 길게 피드백을 써줄 만한 사람은 단연코 그였다. 그는 앞부분에는 나의 장점들을 쭉 열거했고, 뒷부분에는 내가 더 노력해주었으면 하는 점, 그러니까 다소 아쉬운 부분을 적어주었다. 그가 꼬집어준 나의 아쉬운 점은 (내가 생각해도 허술했던) 보고서 작성 능력이었다. 그는 내가 보고서 작성 능력을 보완한다면 더 좋은 마케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응원도 잊지 않았다.
사실 처음엔 그 피드백을 보고 풀이 조금 죽어 있었다. 풀이 죽어 있는 내게 그는 '피드백 점수가 별로 좋지 않으냐'라고 물었고, 나는 대충 객관식 점수가 조금 안 좋게 나온 부분이 있다며 둘러댔다. 실은, 그가 준 피드백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당시 그에게 '완벽한' 후배가 되고 싶었다. 아쉬운 점 하나 없는 무결점의 후배가 되어서 그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달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터무니없는 바람이 또 있을까 싶다. 회사 사장님 중에서도 100% 완벽한 사장님은 없으리라. 그래서 회사에는 동료가 필요하고, 피드백이 필요한 것이다.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고, 각자의 자리에서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서로에게 귀감이 되어주는 것.
신기하게도 피드백을 받은 후, 나는 중요한 보고 자리에 매주 들어가게 되었다. 보고서를 쓸 때마다 그에게 받은 피드백을 떠올렸고, 최대한 핵심적인 내용만 담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모든 보고자들의 보고 내용을 모아 정리하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고, 최고 결정권자분께 다이렉트 메일로 칭찬을 받기도 했다. 만약 내가 그 피드백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부족한 보고서 작성 능력은 사회생활을 하는 내내 발목을 붙잡았을 것이고,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그 피드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는 뛰어난 보고서 작성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가 쓴 문서들을 보면 그가 하나하나 짚어주지 않아도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어떤 부분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가 보였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거나 피드백을 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그런 피드백을 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처음으로 나에게도 후배가 생기고, 후배에게 대면 피드백을 주던 날이 떠오른다. 메모지에 다섯 가지를 적어가면서 몇 번이나 쓰고 지웠는지 모른다. 적은 항목들을 나에게 적용했을 때 과연 나는 잘 해내고 있는 사람인지, 내가 이런 피드백을 주었을 때 '너는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대답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피드백은 피드백 그 자체가 아니라 피드백을 주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야채를 안 먹는 어른이 애들에게 야채 좀 먹어라, 하면 애들이 야채를 먹겠는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은 제대로 된 사람을 곁에 두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