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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an 30. 2021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피드백

한 직장에서 1년을 근무하고 처음으로 동료 피드백을 받던 날, 별로 떨리지 않는 척했지만 엄청 떨리는 마음으로 문서를 열었다. 빠르게 스크롤을 내려 객관식 점수를 훑어보니 거의 100점이나 다를 바 없는 높은 점수였다.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인 데다 유일한 뉴페이스였기 때문에 관심과 집중을 한 몸에 받았던 때였다. 실제로 일을 잘 해낸 성과도 일부 있었겠지만 '신입사원' 치고 잘했다,며 예쁘게 봐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스크롤을 끝까지 내려서 마지막 주관식 문항을 읽는데, 어떤 분께서 다른 글에 비해 아주 긴 피드백을 적어주셨다. 익명이라 누가 적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량만 봐도 글쓴이가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가 회사에서 가장 존경하고, 일을 잘하는 선배였다. 나에게 그 정도로 애정을 갖고 길게 피드백을 써줄 만한 사람은 단연코 그였다. 그는 앞부분에는 나의 장점들을 쭉 열거했고, 뒷부분에는 내가 더 노력해주었으면 하는 점, 그러니까 다소 아쉬운 부분을 적어주었다. 그가 꼬집어준 나의 아쉬운 점은 (내가 생각해도 허술했던) 보고서 작성 능력이었다. 그는 내가 보고서 작성 능력을 보완한다면 더 좋은 마케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응원도 잊지 않았다.


사실 처음엔 그 피드백을 보고 풀이 조금 죽어 있었다. 풀이 죽어 있는 내게 그는 '피드백 점수가 별로 좋지 않으냐'라고 물었고, 나는 대충 객관식 점수가 조금 안 좋게 나온 부분이 있다며 둘러댔다. 실은, 그가 준 피드백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당시 그에게 '완벽한' 후배가 되고 싶었다. 아쉬운 점 하나 없는 무결점의 후배가 되어서 그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달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터무니없는 바람이 또 있을까 싶다. 회사 사장님 중에서도 100% 완벽한 사장님은 없으리라. 그래서 회사에는 동료가 필요하고, 피드백이 필요한 것이다.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고, 각자의 자리에서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서로에게 귀감이 되어주는 것.


신기하게도 피드백을 받은 후, 나는 중요한 보고 자리에 매주 들어가게 되었다. 보고서를 쓸 때마다 그에게 받은 피드백을 떠올렸고, 최대한 핵심적인 내용만 담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모든 보고자들의 보고 내용을 모아 정리하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고, 최고 결정권자분께 다이렉트 메일로 칭찬을 받기도 했다. 만약 내가 그 피드백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부족한 보고서 작성 능력은 사회생활을 하는 내내 발목을 붙잡았을 것이고,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 내가  피드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는 뛰어난 보고서 작성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가  문서들을 보면 그가 하나하나 짚어주지 않아도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가 보였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거나 피드백을 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그런 피드백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처음으로 나에게도 후배가 생기고, 후배에게 대면 피드백을 주던 날이 떠오른다. 메모지에 다섯 가지를 적어가면서  번이나 쓰고 지웠는지 모른다. 적은 항목들을 나에게 적용했을  과연 나는  해내고 있는 사람인지, 내가 이런 피드백을 주었을  '너는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대답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피드백은 피드백 그 자체가 아니라 피드백을 주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야채를 안 먹는 어른이 애들에게 야채 좀 먹어라, 하면 애들이 야채를 먹겠는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은 제대로 된 사람을 곁에 두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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