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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Feb 10. 2021

아버지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진실

영화 <에브리바디스 파인>의 줄거리를 포함합니다.


“아버지 귀엔 절대 들어가지 않도록 해라"


드라마에서 한 가족에게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면, 어머니는 가족들의 입단속부터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고. 드라마에서 뿐만은 아니고, 내가 경험하고 전해 듣기로도 89년도에 태어난 내 시대에는 집집마다 흔한 풍경이었다. 요즘은 얼마나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바깥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온 아버지가 집에서만큼은 편히 쉬시게 하려는 마음과 아버지가 대노하시며 집안을 한바탕 뒤집어엎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영화 <에브리바디스 파인>의 프랭크는  8개월 전, 41년을 함께 살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혼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휴일을 맞아 네 명의 자식들이 집에 찾아온다고 해놓고 돌연 모두가 약속을 취소하자 직접 아들, 딸들의 집에 찾아가기로 한다.


첫 번째로 데이비드의 집에 찾아갔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데이비드를 만날 수 없었고 두 번째로 찾아간 에이미의 집은 넓고 좋았지만 에이미의 남편과 아들의 사이는 어딘가 싸늘해 보인다.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에이미는 아버지를 로버트의 집으로 보내는데, 사실 자식들에겐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바로, 지금 연락이 되지 않는 데이비드에게 마약 문제가 있다는 것. 남매는 데이비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때까지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감추기로 한다.


영화 <에브리바디스 파인>의 프랭크와 로지


세 번째로 찾아간 로버트는 지휘자로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았건만, 월급을 받는 것 외로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타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프랭크가 로버트에게 좀 더 노력해서 더 나은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자 로버트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이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해서 한 일인 것 같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로지 역시, 친구의 아이를 대신 돌보는 척 하지만 프랭크는 그 아이가 로지의 아이임을 직감한다. 프랭크는 자식들에게 진실을 원했지만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는 완벽한 자식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어머니에게는 매일 전화해서 시시콜콜 모든 소식을 전했지만 아버지에게는 손주 녀석이 학교에서 1등을 하고 있다거나 본인이 댄서로서 아주 큰 무대에 서고 있다는 좋은 소식, 혹은 선의의 거짓말만 전했다.


이 시대의 우리 아버지들은 자식들의 진실을 어디까지 알고 계실까. 아니, 어디까지 직접 들으셨을까. 한 외국 프로그램 중에 길거리에서 부모님과 자식에게 인터뷰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부모님께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냐고 묻자 한 아이는 “아버지의 지갑에서 몰래 돈을 꺼내 쓴 적이 있다”라고 비밀을 털어놓았다. 이 인터뷰의 묘미는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표정이 아니었나 싶다. 남들 자식은 다 그래도 우리 아이가 그런 일을 저질렀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그래도 이 아버지는 인터뷰를 통해서라도 자식의 진실을 직접 들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내 주변 친구들의 경우에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터놓고 말하는 비율이 9.5:0.5다. 본가와 멀리 떨어져 사는 한 친구는 매일 어머니에게 전화해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세세하게 다 터놓고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보통 이렇게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해주는 프로세스로 가족의 소식이 오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머니에게 터놓는 것마저 조금씩 어려워지기도 한다. 20대 때에야 취업이 잘 안 되어 속상해도, 남자 친구와 헤어져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도 어머니에겐 모두 다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30대가 되어서까지 이번엔 승진이 잘 안 될 것 같다거나 배우자와의 다툼을 연로해지신 어머니에게 다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어머니에게도 말할 수 없는데, 하물며 아버지에게는 어떻겠는가. 그저 잘 살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어느 시대에나 자식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은 똑같다. 프랭크 역시 그 누구보다 자식들을 사랑한 아버지였다. 다만 프랭크의 자식들이 말한 것처럼 어머니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던 반면, 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프랭크는 자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듣기보다는 더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라고 말했고, 아내가 전해주는 자식들의 사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각자마다 가족의 의미는 다 다르겠지만 이 영화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자면, 잘 살고 있다는 흔한 말보다는 불편하더라도 서로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가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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