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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Feb 14. 2021

택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달, 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으려고 배달앱을 켰는데 엄마가 말했다.


"지금 배달 오기 힘들지 않을까?"


폭설이 예보된 날이었다. 아직 눈이 많이 쌓이기 전이긴 했지만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니 길이 미끄러운 데다가 우리 아파트는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 배달하시는 분들이 위험할 것 같았다. 그날 짜장면 한 그릇 안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굳이 짜장면을 시키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내가 배달을 시키는 만큼 배달을 해주시는 분들의 물량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거늘 솔직히 주문 버튼을 누를 때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하루는, 내 방의 인테리어를 싹 바꿀 요량으로 인터넷으로 침대, 책상, 화장대 등을 한꺼번에 주문했는데 우리 집 전담 배달원 분께서 엄마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무 힘들어요!"라고 하소연을 하고 가셨다고 했다. 조금 나누어서 주문을 했어야 했나 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택배 천국이다.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가로수길까지 가야만 예쁜 옷을 살 수 있는 줄 알았지만 침대에 누워 클릭 몇 번만으로 전국에 있는 옷을 살 수 있게 되었고, 20분 거리에 있는 이마트에 가서 고추장이나 식용유 같은 무거운 물건을 낑낑 거리며 들고 올라오던 것을 이제는 쿠팡 로켓 배송으로 단 하루 만에 배송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쿠팡 로켓 배송은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한 달 동안 모든 배송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는 구독 시스템인데, 처음에는 구독해놓고 잘 안 쓰게 될 것 같아 망설였지만 웬걸, 가족들이 함께 쓰니 이보다 더 경제적일 수가 없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유명한 아이돌이었던 태사자의 김형준 씨가 현재 쿠팡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3~4개 월 정도 택배 기사로 일하며 번 돈으로 여행을 다니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점이 좋다고 했다. 비단 유명인뿐만 아니라 쿠팡은 대학생부터 장년층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다만 모든 일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동시에 존재하는 법. 코로나 사태 이후 너무 많은 물량을 처리하려다가 안타깝게 사망한 직원의 소식이 들려오면서 너무 고된 근로조건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쿠팡이츠 모델로 발탁된 김형준 씨
쿠팡맨의 사망 사건이 일어나자 쿠팡 노조는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물량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쿠팡맨의 성과 측정은 기준 물량 처리 여부로 결정된다. 하루 기준 물량은 한 번에 140가구 안팎이다. 노조에서는 절대 채울 수 없는 물량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많은 곳, 단독주택이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가 많은 지역과 같은 곳은 배송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쿠팡맨들이 '무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무리는 곧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 김하영, <뭐든 다 배달합니다> 중에서


대학 시절, 경마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가 떠오른다. 입장권 판매직을 맡았던 나는,  사람이 들어가 앉으면  차는 좁은 방에 들어가 입장표를 팔았다. 아침 9, 경마장이 개장하면 사람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정말로   장과 잔돈을 건네는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줄이 길어지고, 다른 동료들의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과 쏟아지는 사람들 틈에서  그래도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는데, 뒤에서 직원을 감시하는 매니저의 눈총까지 더해지면 일어나지 않아도  실수까지 벌어지고 만다.


"수진 씨, 목소리가 점점 너무 어두워지는 것 같다"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나의 목소리가 어두워졌던 모양이다. 늘 동료들과 유쾌하게 장난도 치고, 고객 분들께 친절하게 대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나도, 한 시간에 몇 백장의 표를 판매하고는 도저히 미소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옆에 있던 동료는 잔돈을 빨리 내놓으라며 독촉하는 진상 고객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화장실 두 칸을 붙여놓은 크기만 한 공간은 아비규환이었고, 우리는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줄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그 방에서 빠져나와 서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당장 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알아볼까 하다가 그만큼 좋은 보수를 주는 아르바이트가 없어 꾹 참고 약 1년 정도를 다녔다.


만약 내가 그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던 고객이라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대체 여긴 왜 이렇게 느려 터졌냐며 속으로 답답함을 삼키진 않았을까. 나는 오늘도 인터넷 세상을 탐험하며 이거, 저거, 클릭하며 주문 버튼을 누르겠지만, 택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택배 기사 분들의 근로 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이 퍼지고 퍼지면, 최소한 본인들이 주문을 해놓고 택배 기사들이 아파트 입구로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갑질 사태는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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