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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Dec 29. 2020

왜 저를 구독하시나요?

한 시를 읽고 눈물이 나는 것을 참느라 혼났다. 에린 핸슨의 '아닌 것'이라는 제목의 시인데, tvN <유퀴즈온더블록>에 출연한 공유 씨가 읽어줄 때에도, 이하늬 씨의 유튜브에서 들려주었을 때에도 '참 좋다'라고 생각했던 시였다. 몇 번이나 봤던 시인데도 이상하게 그날따라 눈물이 났다. 어쩌면 한 해를 며칠 남기지 않은 이 시점에,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라는 첫 행을 읽고 울컥 터졌는지도.


유독 바쁜 한 해를 보낸 올해 중 마지막 달은 안식의 달로 지내려고 했거늘, 결국 무언가를 해내지도 그렇다고 푹 쉬지도 못한 한 달을 보내고 말았다. 새로운 무언가를 해내기엔 지쳤고 푹 쉬기엔 욕심이 습관적이어서다. 한 살 더 먹으면 무언가가 대단히 바뀔 것 같아도 30년 넘게 졸린 눈 비비며 제야의 종소리를 들어보니 1월 1일은 또 아무렇지 않게 찾아왔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그저 묵묵히 하던 일을 하는 것. 그래서 12월엔 늘 쓰던 브런치 글을 부지런히 썼다.


올해 3월에 브런치 구독자 수가 1,300명이었는데 지금 2,400명이 넘었다. 1년 동안 구독자를 1,000명 넘게 모은 것이다. 누군가의 글을 구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그동안 새로운 구독자가 생길 때마다 마치 주식이 오르는 듯 기분이 좋았지만 이분들이 왜 나를 구독해주실까, 하고 깊이 궁금해한 적은 없었다. 반대로 나는 왜 누군가의 글을 구독하는지 생각해보면, 크게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어떤 글에서 유용한 정보를 얻었을 때 다음에도 또 무언가를 배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구독하거나 아니면 글에 담긴 감정에서 상당한 공감을 느꼈을 때 그 사람의 다음 생각들이 궁금해서, 혹은 나와 비슷한 사람과의 동질감에서 비롯되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 구독을 한다. 나는 정보성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므로 어쩌면 내 구독자 분들은 후자의 이유로 내 글을 구독해신 것이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다(구독자님, 혹시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나는 구독을 결정하기까지 꽤 까다로운 기준을 두는 사람인 것 같다. 나중에 읽기 싫어지면 수신거부 처리할 생각으로 각종 뉴스레터를 모조리 다 구독해놓은 적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꾸준히 열람하는 뉴스레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요즘 같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 수신거부를 하는 것조차도 에너지라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구독을 누르는 데 더 신중을 기울이게 됐다. 그러니 나와 아주 가까운 곳 혹은 내 구독자 분들 중에는 해외에 거주하시는 분들도 계시니 먼 타국에서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공감을 느끼고, 내가 글을 쓰고 발행할 때마다 꾸준히 그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눌러준다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성의가 필요한 일이며, 단순히 구독자 한 명이 더 늘었다고 좋아하고 말기엔 아주 부족한 일인 것이다.


'아닌 '이라는 시에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앞으로도 글을 쓰기 위해 새로운 책을 읽을 것이고, 책을 읽음으로써  생각을 정리해 글을  것이다. 아마도  글을 구독하기로 결심해주신 2,400명의 사람들은 이미 그것이 나라고 생각해주신 것이었을 텐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여전히 바보같이, 나이를 먹는 것을 두려워한다.


다음 해엔 서른셋이 되지 말고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서른셋이 아닌 그것이, 본디 나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기를.


사진 속 여성 분은 제가 아니지만.. 책은 제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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