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브런치에 쓴 글을 합해보니 총 106편이다. 대략 월 8편, 일주일에 2편의 글을 썼다는 뜻이다. 올해는 '아날로그맛 나는 오후' 매거진에 써오던 일상 에세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제들도 추가됐다. 1월에 문토와 함께 시작한 '글까짓거'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느끼고 배운 이야기들을 쓰기도 했고, 9월에 작업실을 얻으면서 작업실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쓰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써본 적 없던 주제들이라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선한 경험이 되고 있다.
2020년이 이제 열흘도 남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2020년을 맞이하러 혼자 제주도에 갔었다. 사실 스스로를 억지로 등 떠밀어 간 여행이었는데, 막상 혼자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내면서 여행 오길 무조건 잘했다고, 여행 내내 몇 번을 되뇌었는지 모른다. 올해의 마지막은, 비록 여행을 갈 수는 없지만 호텔 부럽지 않은 작업실에서 한 해 동안 쓴 글을 되돌아보려고 한다. 연말의 하이라이트는 시상식이 아니던가. 이름하여 이것은 '나 혼자 상 주고 나 혼자 상 받기'다!
내 브런치 글의 랭킹 5 중 올해 쓴 글이 두 편이 있다. 하나는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남자가 버튼을 안 눌렀다>이고 (랭킹 1위, 조회수 135,051), 다른 하나는 <출근길에 그 남자가 주고 간 것>(랭킹 4위, 조회수 89,161)이다. 본의 아니게도 이 두 편의 글엔 남자가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으로 쓰다보니 제목만 보면 로맨스나 범죄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지만 사실 이 두 편의 글이 담고 있는 핵심은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글은, 최근에 입주한 오피스텔의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겪은 일에 대한 글이다. 낯선 사람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혼자 엘리베이터를 탈 때와 달리 기본적으로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데,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공감해주신 듯하다. 각종 사건 사고가 벌어지는 무서운 세상이라지만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남자분이 (의도하셨는진 알 수 없지만) 나를 배려해 일부러 서둘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앞장서주시는 것을 보고, 그래도 아직은 타인을 배려하는 따듯한 마음이 더 큰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적어 내려 간 글이다.
두 번째 글은, 출근길에 처음 본 중년의 남자분이 갑자기 나를 멈춰 세우시고 간식을 챙겨주신 사연인데, 아마도 본인의 사회초년생 시절이 떠올라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으로 간식을 사주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두 상황 모두 긴장하고 경계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생각지 못한 따뜻한 배려를 받으면서 그래도 아직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보다 더 많다고 믿게 해 준 것 같다. 아마 많은 독자 분들도 아직 세상이 살 만하기를 바라며 이 글에 공감해주신 게 아니었을까. 그것 또한 아직 살 만한 세상이다!
운전을 시작한 건 작년 늦가을쯤부터였는데, 올해 처음 차 사고를 냈다. 다행히 타인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고 나 혼자 도랑에 빠졌다. 카페 주차장에서 난 사고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쳐다보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고, 보험 회사에 전화를 하고 뒷수습을 하는 일이 꽤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그런데 나는 왠지 이 사고가 딱 좋은 타이밍에 난 사고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을 시작한 지 6개월쯤 흐르자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느슨해졌고, 노란 신호가 들어오면 속도를 늦추려고 하기보다는 빨리 지나갈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 사고가 난 후 초보 시절의 극 겸손함을 다시 장착했고,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고는, 평생 무사고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 사고였다. 사고가 단 한 번도 나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인간인지라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사고가 나더라도 최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올해 브런치에서 열린 공모전에 제출하려고 쓴 글이었는데, 아쉽게도 당선되진 않았지만 내년에도 마음 깊이 기억해둘 교훈이 되라고 상을 준다!
운이 좋게도 올해 1월 첫 주부터 문토에서 글쓰기 모임 '글까짓거'의 리더로 활동을 했다. 세 시즌을 진행하는 동안 첫 시즌을 제외하고는 코로나19로 인해 중간중간 모임이 중단되어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내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었고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사실 나는 이전부터도 모임에 나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막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면 겁부터 났다. 과연 처음 만난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를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까, 나를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별의별 걱정을 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직접 모임에 참여해보니 그 모든 고민들은 생각보다 심히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같은 마음으로 모였는데 이상하게 볼 일이 무엇이 있으며, 마음이야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주면 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어찌하겠느냐 말이다. 나처럼 모임에 나가고 싶지만 망설이고 계신 분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쓴 글인데, 어서 코로나가 안정되어서 이 글이 널리 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 불필요한 고민이 들어 새로운 환경에 발 딛기 두려울 때면 특효약처럼 다시 이 글을 꺼내어 볼 테다.
남이 주는 상도 좋지만 요즘 같은 때일수록 나 스스로에게 잘했다, 잘하고 있다, 머리 한 번 더 쓰다듬어주고 자주 힘을 북돋아주어야 할 것만 같다. 졸린 눈 비비며 쓰지 않았더라면 까마득히 잊혔을 일들이 올해의 나를 만들었고, 내년의 나를 기대하게 한다. 내년에도 상 받으려면 또 열심히 써야겠다!
올해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 분들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