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살롱, 문토에서 처음 글쓰기 모임 리더를 맡고 멤버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원래의 나였다면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먼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을 테고, 한참 분위기를 살펴본 후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하면 그제야 말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됐다. 모임의 리더 역할을 맡았다면 이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깨야 했고, 준비한 자료를 정해진 시간 안에 진행하고 토론을 이끌어야 했다. 그렇다. 나는 지금 후회해도 이미 늦은 리더의 역할이었다. 등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만, 내 입은 나도 모르게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그렇게 세 시간이 흐른 뒤 남들 모를 혼자만의 속앓이를 한 나는 풀린 다리를 질질 끌고 집에 갔다.
다행히 다음 모임, 그다음 모임에 갈수록 리더의 역할이 점점 편하고 재미있어졌다. 물론, 내겐 너무나 어려운 역할인지라 모임이 끝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내가 별로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내가 멤버로서 그 자리에 참여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 전에 말하지 않거나 어쩌다 내뱉은 한 마디가 혹시 이상하게 들리진 않았을지 한 시간 내내 걱정하느라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19의 심각성이 높아짐에 따라 재택근무가 한 달 이상 이어지면서 매일 아침 본가에서 7분 거리의 작업실로 출근을 하고 있다. 본가로 퇴근하기가 귀찮은 날에는 그냥 작업실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다시 작업실 컴퓨터로 출근을 할 때도 있었는데,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본가에서 작업실로 출근을 하는 날은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10시까지 알차고 바쁜 스케줄을 만들어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는데, 작업실에서 자고 일어나 바로 컴퓨터로 출근을 하는 날은 회사 출근 시간인 10시 5분 전에 겨우 눈곱 떼고 일어나 왠지 모를 찝찝한 하루를 보내게 되는 것이었다.
같은 장소로 출근을 하는 데도 내 몸은 다른 몸인 것. 씻고, 화장품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 운전해서 작업실로 도착했을 때의 내 몸은 바짝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몸, 10시 5분 전에 겨우 노트북 앞에 앉은 내 몸은 아직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천근만근의 몸이다. 몸과 마음가짐이 이리 다를진대 그날의 하루는 얼마나 다를까. 한 테이블에 앉아 같이 글을 쓰는 모임도 마찬가지다. 꼭 리더만 모임을 주도해야 한다는 법도 없고, 멤버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으라는 법도 없다. 다만, 여기에 앉은 우리 모두가 리더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고 모임을 이끌 수 있는 것인데, 스스로 정한 '멤버'의 역할에 갇혀 살아온 나에겐, 처음 맡은 글쓰기 모임의 리더 역할이 유독 더 크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9시 20분쯤 작업실에 도착했다. 10분간 환기를 시키고, 차를 끓여 마신 뒤 30분간 영상 편집 공부를 했다. 누군가 내게 "너는 월세값이 하나도 안 아깝겠다"라고 했는데 그 칭찬을 들은 (아주 찰나의) 순간만큼은 임대인 부럽지 않은 임차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