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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an 16. 2021

좁은 주차장만큼 마음도 좁아지나요  

본가 아파트 주차장은 좁다. 밤늦게 들어오면 이미 빽빽하게 차들이 들어선 주차장 한가운데에 중립으로 차를 세워야 하고, 때론 그것마저 어려워 난감할 때가 있다. 운전 경력이 1년이 넘어서도 고속도로는 꿈도 못 꾸지만,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니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랑스럽다.


아침에 작업실로 출근하기 위해 차를 타려고 하면 그때부터 전쟁 아닌 전쟁이 시작된다. 중립으로 세워진 차들을 퍼즐 맞추듯 힘으로 밀어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중립으로 해놓지 않은 차가 있으면 차주에게 전화해서 차를 빼달라고 해야 하는데 내 전화를 받은 한 차주는 참으로 번거롭다는 목소리로 ‘어차피 출근하려는 길이었으니 내려가겠다’며 10분 후쯤 저 멀리서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출근하던 길이 아니었다면 나올 생각을 안했다는 뜻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걸어오는 시늉만이라도 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황당한 일들을 여러 번 겪을수록 주차장에선 친절해지지 말자는 마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오늘도 주차장에 내려가자마자 A라는 사람이 마치 나보고 들으라는 듯 애절한 기합소리를 내며 중립 상태의 차를 밀고 있었다. 문제는, 그 차를 내 차 앞쪽으로 밀고 있었는데 A가 어떻게든 혼자 그 차를 다 밀고 나간다고 하더라도 또 내가 혼자 그 차를 낑낑거리며 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결국 A와 함께 그 차를 밀었고, 대신 나도 나가야 하니 다시 반대쪽으로 차를 같이 밀어달라고 부탁했다. 중립 상태의 차를 내 차 앞쪽으로 밀어낸 후, A는 본인의 차를 출구로 이동시켰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 그런데 제가 늦었는데..”라고 말했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같이 밀지 않았으면 더 늦으셨을 텐데, 라고 말할 정신도 없었던 나는 그냥 묵묵히 차를 힘껏 밀어냈는데 A는 옆에서 차에 손을 대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며 다시 본인의 차로 뛰어 갔다. 


차가 있기 전에는 차가 있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주차 공간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디든 차는 세울 수 있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은 정말이지 순수했다. 차가 있는 사람이라면 살 곳을 알아볼 때 주차 공간도 필히 알아보라고 했는데, 다행히 작업실 주차장은 널찍하고 차도 별로 많지 않다. 입주자가 늘면 이곳 또한 매일 주차 전쟁이 펼쳐질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굳이 양쪽에 주차된 차 사이로 주차를 하거나 중립 상태의 차들을 밀어내는 고난도의 미션을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일까? 아주 가끔씩 작업실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차가 만났을 때, 서로서로 양보해주는 여유를 자주 목격하곤 한다. 주차 공간의 여유는 마음의 여유와 어마어마한 상관관계가 있는 게 확실하다.


매일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들만 모아서 만화책 한 권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웃긴 이야기인지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끝나지 않는 주차 전쟁의 스트레스를 그렇게라도 풀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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