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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Mar 05. 2021

츤데레는 정말 오다 주웠을까

겉으로는 조금 차가워 보일지언정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도움을 주거나 목적 없는 마음을 나누는 사람, 일명 츤데레.


내가 이만큼을 주었으니 너도 이만큼을 나눠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오다 주웠으니 갖든지 말든지'하는 마음으로 나의 것을 나눠주는 마음을 가진 사람. 영화 <오베라는 남자>의 주인공 '오베' 역시 츤데레의 정석을 보여주는 인심 좋은 까칠남이다. 사랑했던 아내가 암으로 죽은 뒤, 자신 또한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느낀 오베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고 한다. 이웃 사람들의 방해(?)로 쉽게 죽지도 못하지만.


오베의 눈에 이웃들은 왜 그렇게들 하나같이 모자란지. 운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라디에이터도 못 고치고, 아버지에게 커밍아웃을 한 뒤 집에서 쫓겨나고, 하다못해 길고양이가 오베의 집 앞에 떡하니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오베는 겉으로는 왜 그렇게 나를 괴롭히냐고(왜 나를 가만히 죽지도 못하게 하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결국 운전을 가르쳐주고, 라디에이터도 고쳐주고, 집에서 쫓겨난 아이에게 집을 내준다. 물론, 고양이에게도. 하나부터 열까지 오베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들이 결국 오베가 이 세상을 떠날 수 없는, 이곳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내를 찾아가 이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오베

겉으로는 나에게 잘해주고 모든 것을 내어줄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목적을 드러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데...' 라며 억울해했다. 마치 모든 걸 도둑맞았다는 듯이.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의 성의를 받기만 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인간관계에서 100% 한쪽의 성의만 쏟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누가 더 상대방에게 잘했느냐에 대한 퍼센트를 차치하고, 지난날에 자신이 쏟은 성의에 대한 보답을 요구하는 듯한 말을 듣고 있자니 입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겉으로는 따뜻한 척하면서 시커먼 본심을 드러내는 사람보다 겉으로는 툴툴대더라도 본심이 항상 깨끗한 사람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감사하게도 내 곁에는 츤데레 같은 사람들도 많았다. 스무 살에 뭣도 모르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버린 라면 국물을 어떻게 치워야 하는지도 몰랐다. 다음 타임 아르바이트 분께 POS를 인수인계할 때는 돈 계산이 맞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어 벌벌 떨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신기할 정도로 편의점 점장님은 내 편의를 많이 봐주셨다. 라면 국물 같이 지저분한 것들은 자신이 치울 테니 그냥 놔두라고 하거나 계산이 맞지 않더라도 메우라는 말은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이셨다. 편의를 봐준다는 티를 내기는커녕 너무 흘러가듯이 말씀하셔서 그 당시에는 그게 편의를 봐주시는 건 줄도 몰랐다. 덕분에 맡은 일을 열심히 하게 됐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거스름돈 계산만큼은 자신 있었다.


츤데레는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커피 거품을 입에 묻히고 먹는 여자 주인공에게 말로는 "더러워"라고 하면서 키스를 해버리는(?) 알쏭달쏭한 남자 주인공 캐릭터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진짜 속성은 '목적 없는 마음' 아닐까 싶다. 이웃이 운전을 잘하건 말건, 라디에이터가 고장 나건 말건, 집에서 쫓겨났건 말건, 길고양이가  곳이 있건 말건 상관하지 않으면  것을. 기어이 툴툴거리면서 그들을 챙기는 오베가 나는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던데.


"내가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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