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개에 육박하는 내 브런치 글 중 가장 스테디셀러 글은 <면접관이 된 내가 생각하는 면접 잘 보는 방법>이다. 요즘같이 유독 조회수가 높게 나온 날이나 유입 검색어에 '면접 잘 보는 방법', '면접관 표정' 같은 것들이 눈에 띄는 날이면, '요새 면접 보는 분들이 많으신가 보다'하고 생각한다.
나는 인사 담당자도 아니고, 이 글을 썼던 당시(그리고 여전히) 오랜 연차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늘 면접자의 역할이었던 내가, 나와 함께 일할 인턴사원을 뽑는 면접에 면접관으로 처음 참여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을 적은 것이었다. 이 글을 쓰고 1년 여 시간이 지난 후, 업데이트를 해야 할까 싶어 이 글을 몇 번 다시 읽어보기는 했지만 고치고 싶은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난 후에 퇴색되어 버리는 것들이 이 글에 생생히 살아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면접을 정말 많이 봤다. 또래에 비해 이직이 잦았던 탓도 있고, 취업이 안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도저히 셀 수도 없을 만큼 '양'으로 승부했다. 누군가는 그것도 다 돈이고, 에너지라며 진짜로(?) 가고 싶은 회사에만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지난날의 내 면접 경험을 돌아보면, '불러주시는 곳마다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1년 차, 2년 차인 내가 회사 실무자 혹은 대표님들과 1시간 동안 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가 면접 말고 또 있을까?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같이 일할 동료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볼 기회가 또 있을까?
한 회사에서는 면접관 한 분이 나를 앞에 앉혀두고 갑자기 그 자리에서 좋은 카피 하나를 뽑아보라고 했다. 식은땀이 났다. 면접 자리에서 꽤 당황스러운 요청을 많이 받아보았지만 그것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회사도, 면접자도, 각자의 요청과 희망사항이 얼마나 잘 맞는지를 보는 것이 면접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자리에서 좋은 카피를 뽑지 못했다. 빠르게 카피를 뽑아내는 데 자신 있지만 그 자리에서는 좋은 카피가 나오지 않았다. 길거리를 걷거나 화장실만 다녀올 수 있었어도, 빠르게 카피를 뽑을 수도 있었을 텐데. 좁은 회의실에서 압박감을 견디며 카피를 뽑지 못한 나는 그 회사와 잘 맞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내가 가고 싶은 회사가 어디인지에 대한 데이터를 쌓을 수 있었던 기회도 많았다. 1차 면접부터 대표님과 일대일 단독으로 면접을 봤던 회사에서는 내 자기소개를 듣기도 전에, 회사 소개부터 해주겠다고 하셨다. 늘 '을'의 입장이었던 나는 순간 ‘갑’의 입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대표님이 혼자서 나를 배웅해주셨고,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셨다. 단면만 보고 모든 것을 알 수 있겠냐만 이 회사에 들어가면 수평적인 업무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겠다는 조금의 느낌이 들었다. 비록 그 면접에서는 떨어졌지만 시간이 아깝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어느 학원에 가도 배울 수 없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20년 지기 친구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관계가 끊긴 친구들도 많다. 학창시절에 잘 지내던 친구와 한순간 관계가 끊기면서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게 아닐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러나 만나면 만날수록 잘 맞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만나면 만날수록 불편하고 어색해지는 사람도 있다는 걸 사회로 나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면접에서 떨어졌을 땐, 내가 대답을 잘못했나, 스펙이 부족했나 되짚으며 자책에 빠지기도 했지만 많은 회사를 만나보니 나와는 잘 맞지 않은 회사였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초년생 시절, 치기 어린 마음에 '당신들이 뭔데 제 인생을 평가해요?' 하며 분노에 찬 소주를 들이켠 적도 있었으나 사실 그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내 인생과 커리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 메이지대학교 교수인 사이토 다카시는 그의 책 <내가 공부하는 이유>에서 “매일 바쁘게 살다 보면 일상의 리듬에 취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가 쉽지 않다”라고 했다. 반복되는 일상에 충격을 주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낯설게 보기’가 아무 때나 쉽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면접은 회사에 취직을 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을 하는 그날까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건강한 충격 요법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