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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Mar 22. 2021

화 안 내고 운전 가르쳐주기

얼마 전, 언니한테 운전을 가르쳐주러 나갔다. 내 운전 경력도 이제 약 1년 반 정도로 겨우 초보운전 딱지를 뗀 수준이지만, 초보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언니도 나에게 운전을 배우기를 바랐다. 언니를 운전석에 태우고 옆 자리에서 안전 벨트를 매며 마음속으로 딱 한 가지만 되뇌었다. 절대로 흥분하지 말자.


초보 시절, 나는 옆에 앉은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내게 화를 내거나  소리를 내는 것이 싫었다.    실수로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는 이유로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똑같은 잔소리를 반복하는 것도 싫었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려야 하는지 설명해주지는 않으면서 나의 부족한 주차감각에 한숨을 내쉬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연수를 끝낸  혼자 가까운 주변을 돌며  속도에 맞춰 운전 연습을 했다. 운전은 무서웠지만 차라리 혼자가 나았다. 옆에서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히려  침착하게 운전을   있었고, 생각보다 내가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자신감도 얻었다.


그 자신감으로 지인과 함께 판교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 고속도로를 타 버린 적이 있다. 어두운 밤이었던 데다가 고속도로에는 자신이 없었던 터라 순간 패닉에 빠져버렸다. 하필 어젯밤에 고속도로 사고 장면 영상을 본 게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옆에 탄 지인은 운전을 전혀 하지 못했고, 나는 그저 내비게이션을 잘 봐달라는 말만 남긴 채 온 집중을 다해 운전을 했다. 속도위반 차 때문에 큰 사고가 일어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검은 도로를 달리면 달릴수록 왠지 모르게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옆에 탄 지인이 무서워하는 나를 위해 별 다른 말을 시키지 않았지만, 간간히 "잘하고 있는데 왜~"하며 침착하게 응원해준 덕분이다. 길고도 길었던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마자 갓길에 차를 세우고 참았던 소리를 질렀다. 우리 살았다!!! 우리 살았어!!!


그래서 나는 언니에게 화를 내지 않고 운전을 가르쳐줄 수 있었을까? 잘 넘어가나 싶다가 두어 번 정도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 있었다. 정신을 부여잡고 침착하려 애썼지만 그 후로도 나도 모르게 같은 잔소리를 반복했다. "아까 그거 위험한 거였어.", "또 그런 상황이 생기면 말이야..." 그리고 며칠 뒤, 언니에게 운전대를 맡겨도 될 법한 순간에도 차라리 내가 운전을 하는 게 속 편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니까 나는 초보의 마음은 기억하면서 초보를 믿지 못하는, 초보인 것이다. 


운전이 뭐 별 건가. 운전은 아주 간단한 조작법만 알면 운전면허증이 있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복잡한 도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고에 대비할 능력을 갖추고 경험치를 쌓아나가야 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내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뒤를 보지 않은 채 뒷걸음을 치길래 '에이, 내가 뒤에 있는 것 알겠지'하고 가만히 서서 새 운동화를 밟힌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뒷걸음을 치는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옆으로 피한다. 사람들의 행동은 내 예상을 벗어날 때가 많음을 수많은 시간과 경험을 통해 쌓은 덕분이다. 운전도, 그 무엇도 마찬가지다. 주행 거리가 쌓이고 경험이 쌓여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법이다.


우리 모두 네 발로 걷고 나서야 두 발로 걸었지 않은가. 그러니 다음 연수 때는 하나를 더 기억해야겠다. 초보 운전자를 믿고 격려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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