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언니한테 운전을 가르쳐주러 나갔다. 내 운전 경력도 이제 약 1년 반 정도로 겨우 초보운전 딱지를 뗀 수준이지만, 초보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언니도 나에게 운전을 배우기를 바랐다. 언니를 운전석에 태우고 옆 자리에서 안전 벨트를 매며 마음속으로 딱 한 가지만 되뇌었다. 절대로 흥분하지 말자.
초보 시절, 나는 옆에 앉은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내게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싫었다. 딱 한 번 실수로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는 이유로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똑같은 잔소리를 반복하는 것도 싫었고, 왜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려야 하는지 설명해주지는 않으면서 나의 부족한 주차감각에 한숨을 내쉬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연수를 끝낸 뒤 혼자 가까운 주변을 돌며 내 속도에 맞춰 운전 연습을 했다. 운전은 무서웠지만 차라리 혼자가 나았다. 옆에서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히려 더 침착하게 운전을 할 수 있었고, 생각보다 내가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자신감도 얻었다.
그 자신감으로 지인과 함께 판교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 고속도로를 타 버린 적이 있다. 어두운 밤이었던 데다가 고속도로에는 자신이 없었던 터라 순간 패닉에 빠져버렸다. 하필 어젯밤에 고속도로 사고 장면 영상을 본 게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옆에 탄 지인은 운전을 전혀 하지 못했고, 나는 그저 내비게이션을 잘 봐달라는 말만 남긴 채 온 집중을 다해 운전을 했다. 속도위반 차 때문에 큰 사고가 일어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검은 도로를 달리면 달릴수록 왠지 모르게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옆에 탄 지인이 무서워하는 나를 위해 별 다른 말을 시키지 않았지만, 간간히 "잘하고 있는데 왜~"하며 침착하게 응원해준 덕분이다. 길고도 길었던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마자 갓길에 차를 세우고 참았던 소리를 질렀다. 우리 살았다!!! 우리 살았어!!!
그래서 나는 언니에게 화를 내지 않고 운전을 가르쳐줄 수 있었을까? 잘 넘어가나 싶다가 두어 번 정도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 있었다. 정신을 부여잡고 침착하려 애썼지만 그 후로도 나도 모르게 같은 잔소리를 반복했다. "아까 그거 위험한 거였어.", "또 그런 상황이 생기면 말이야..." 그리고 며칠 뒤, 언니에게 운전대를 맡겨도 될 법한 순간에도 차라리 내가 운전을 하는 게 속 편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니까 나는 초보의 마음은 기억하면서 초보를 믿지 못하는, 초보인 것이다.
운전이 뭐 별 건가. 운전은 아주 간단한 조작법만 알면 운전면허증이 있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복잡한 도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고에 대비할 능력을 갖추고 경험치를 쌓아나가야 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내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뒤를 보지 않은 채 뒷걸음을 치길래 '에이, 내가 뒤에 있는 것 알겠지'하고 가만히 서서 새 운동화를 밟힌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뒷걸음을 치는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옆으로 피한다. 사람들의 행동은 내 예상을 벗어날 때가 많음을 수많은 시간과 경험을 통해 쌓은 덕분이다. 운전도, 그 무엇도 마찬가지다. 주행 거리가 쌓이고 경험이 쌓여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법이다.
우리 모두 네 발로 걷고 나서야 두 발로 걸었지 않은가. 그러니 다음 연수 때는 하나를 더 기억해야겠다. 초보 운전자를 믿고 격려해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