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제안, 그리고 청소년 에세이툰 강의 준비
한 달 전쯤, 브런치를 통해 강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가끔씩 브런치나 제가 가진 SNS 채널들을 통해 이러한 제안을 받아왔는데, 이번에는 조금 '앗'하고 놀란 강의 제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청소년 대상의 강의였거든요. 마지막으로 청소년과 이야기를 나누어본 게 언제였더라. 사촌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어본 지도 3년이 넘어가는 것 같은데.
덜컥 수락을 한 뒤, 예전에 만들어두었던 어른 대상의 강의 자료를 참고해 강의 자료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듣는 수업이라고 하니, 가장 연령이 낮은 친구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건 조금 어렵겠지? 하며 지우고, 이건 더 어렵겠지? 하며 수정하고... 그러다 머리 좀 식힐 겸 엄마 옆에 누워서 TV를 보는데 <유 퀴즈 온더 블록>에 한 어린이가 게스트로 출연을 했습니다. 이 어린이는 MC 유재석 씨에게 퀴즈를 내놓고는 본인도 정답을 잊어버렸는지 "정답은 아저씨가 알아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저라면, 정답을 모르는 게 민망해서 쩔쩔맸을 텐데 말이죠.
"강의 자료를 다시 수정해야 할 것 같아. 나보다 더 똑똑하잖아..."
"그럼. 요즘 어른보다 더 똑똑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시 방으로 들어가 생각해봅니다. 나는 왜 청소년들에게 글을 쓰라고 말하려는 걸까. 그것도 기왕이면 '잘' 쓰라고 말해야 하는데. 나의 청소년 시절로 되돌아가 봅니다. 솔직히, 저는 청소년 때 에세이나 일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교과서나 참고서만 읽었지, 소설책을 3장 이상 읽어본 적도 없습니다. 오로지 시험 점수에만 매달렸는데, 점수는 그냥 고만고만했습니다. 하지만 작문 시간을 참 좋아했습니다. 친구들은 기피하는 글쓰기 발표도 항상 먼저 나섰는데, 저는 아마도 그때 시험에 대한 압박감 속에서 유일한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작문 시간은 나라는 아이를 깊이 들여다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대학에 가야 한다고 해서 갔고, '문예창작학과'가 정확히 무엇을 배우는 학과인지도 모른 채 수시 합격을 했습니다. 그렇게 흘러 흘러 살아가다가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취업 전쟁을 마치고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20대 말부터였습니다. 그때부터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소심한 줄만 알았던 내가 생각보다 가능성이 크고, 독립과 성장의 욕구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요. 저를 스무 살 때부터 알아온 제 친구는 서른을 기준으로 제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20대 때는 늘 집순이었던 네가 30살이 되더니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가는 사람으로 바뀐 것 같다고. 저는 그 차이가 글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습니다.
청소년이었던 내게 누군가 에세이를 써보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저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을 겁니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으면서 시험 점수가 조금이라도 더 잘 나와야 한다는 걱정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6월에 만나게 될 아이들에게 에세이를 써보라고 말할 겁니다. 아이들은 분명히 저보다 더 똑똑할 테니까, 그때의 저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이 궁금해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수업에 스스로 참여했을 테니까요.
요즘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진 청소년들이 긴 글을 읽지 못하고 어휘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이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유튜브를 통해 짧게 편집된 영상들을 자주 보다 보니, 일부러 긴 호흡의 콘텐츠를 접하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밸런스가 쉽게 무너져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험 신호를 느끼곤 하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문해력은 단순히 긴 글을 잘 읽고 못 읽고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 대해 스스로 가치를 판단하는 역량과 자신의 생각을 기반으로 비판할 수 있는 역량 등 무수히 많은 역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해력은 곧 나의 삶을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저는 그래서 청소년들이 꼭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한계를 긋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과감한 상상력으로 네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종이에 네가 어떤 사람인지 적어보라고. 오래 전의 나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들을 담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