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면접 일화다.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 회사에서 면접을 봤다. 중국어 능력이 필요한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중국어 번역 테스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어로 적힌 지문을 중국어로 번역해 말해야 하는데, 회사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가 많아 중국어가 능숙한 친구에게도 쉽지 않았다.
친구는 당연히 그 면접에서 떨어질 줄 알았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면접관에게 "이 단어는 중국어로 어떻게 말하나요?"하고 코치코치 다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사한 이후 면접관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은, 바로 그 점이 친구가 합격한 이유였다는 것이다.
보통 다른 지원자들의 경우 테스트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한 문장을 아예 통째로 날려버리거나 포기해버린다고 한다. 아마 나였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시험지가 주어지면 정해진 시간 안에 아는 만큼의 답을 풀어내는 데 익숙해져 있으니까. 하지만 친구는 달랐다. 시험을 보던 중에 답을 모르겠다며 손을 들고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면접관의 입장에서는 다소 황당하게 느꼈을 만도 한데, 면접관은 그 태도에서 친구가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일을 하면서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너무 쉽게 포기해버리기보다는 질문을 통해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는, '없는 길을 만들어낼 인재'임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주어진 것에 나를 끼워 맞추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한 번은 누군가와 미팅을 잡기 위해 이메일을 주고받는데, 상대방이 "차주 수요일 이후로 미팅 가능한 시간 알려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가급적 금주에 미팅을 진행하고 싶었기 때문에 차주 수요일 이후는 너무 늦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내게 한 동료가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자초지종을 들은 동료가 참 별 것도 아닌 일이라는 듯 이렇게 말했다.
"금주에는 시간 안 되냐고 물어봐요. 상대방도 금주에 만나자고 하면 너무 재촉하는 걸까 봐 차주에 만나자고 한 걸 수도 있잖아요."
나는 왜 상대방이 내민 선택지 안에서만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당연히 차주 수요일 이후로만 시간이 돼서 그렇게 제시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만 각도를 달리 보면 상대방도 내가 예상치 못한 어떠한 이유로 B 안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보였다. 물론, 내가 처음 생각한 대로 차주 수요일 이후만 시간이 가능한 걸 수도 있겠지만, 금주는 정 어려운 것인지 한 번쯤 물어도 예의에 어긋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 간에 더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터였다.
나는 지금까지 오지선다형으로 인생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다섯 개의 항목이 주어지면 그 안에서 어떻게든 하나를 선택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그러나 누군가는 6번을 만들고, 7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 내가 얼마나 수동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를 깨달았다. 타인이 만든 선택지 안에서의 선택이 강요될 때에는 더욱이 의심하고, 나에게 더 유리한 대안을 제시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기초적인 단계이자, 누군가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지 않는 주체성을 키우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