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동물농장>에 물을 마시러 갈 때에만 유독 천천히 걷는 강아지, 동이가 나왔다. 간식을 먹으러 밥그릇을 향할 때나 화장실을 갈 때는 다른 강아지들과 다름없이 활발하게 잘 걷고, 뛰어다니는 아이가 꼭 물을 마시러 갈 때에만 살금살금 슬로모션으로 걷는다. 마치 새벽 늦게까지 놀다 부모님 몰래 집에 들어온 사람처럼,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하다. 동이는 왜, 물을 마시러 갈 때만 이렇게 걷는 걸까.
<TV동물농장>이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와 같은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 그 어떤 문제를 가진 반려동물이라고 해도 반려동물 훈련사의 훈련을 거치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이 되곤 한다. 문제 행동의 대부분은 주인이 집안에서 예뻐해주기만 해서 나쁜 버릇이 생겼거나, 사람의 시선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동물들이 느끼는 불쾌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이의 독특한 행동도, 그러한 문제 중의 하나일 것이며 훈련사가 금방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이찬종 훈련사의 해결책은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해결책과 조금 달랐다.
"그냥 이렇게 두세요. 아마 지금 교정을 하려고 하면 동이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거예요"
적어도 7년 넘게 이 행동을 반복해온 동이에게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떠한 계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예를 들면, 동이가 물을 마시러 가는 중에 갑자기 주인이 어떠한 다른 이유로 소리를 질러 동이의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앉았을지도 모른다. 자기에게 소리를 지른 것으로 착각하고, 자신이 뭔가 잘못을 했다고 오해해 그다음부터 물을 마시러 가는 길에는 더 조심조심히 걸었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인가 싶을지 몰라도, 애초에 소심한 성향으로 태어난 동이에게는 작은 사건도 다른 개들보다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고칠 필요가 없는 이유는, 행동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조차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동이의 행동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지, 동이의 불편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어서다. 동이는 이미 이 행동을 7년 넘게 반복해옴으로써 불편한 행동으로 느끼지 않고 있고, 딱히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도 않는다. 혹여 말을 못 하는 네가 어딘가 불편한데도 말하지도 못하고 있을까 봐 걱정한 주인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을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유독 많이 웃는다. 원래 웃음이 많기도 하지만, 친한 친구가 아닌 처음 만난 사람이나 외부 사람들을 만날 때 더 많이 웃는 편이다. 정말 웃겨서 웃는 것은 맞는데, 처음 만난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더 후하게 웃게 되는 것 같다. 어색한 분위기를 못 견뎌하는 편인데, 언젠가 나의 호탕한 웃음 덕분에 비즈니스 미팅이 잘 이루어진 경험을 겪은 후부터 이러한 습관이 굳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그런 내 모습이 조금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처음 만난 사람이랑 이야기를 하는데 뭐가 그렇게 웃을 일이 많다고 주책맞게 웃기만 하고 왔을까, 나사 빠진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을까, 다음에는 적당히 웃어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그게 될까? 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처음 만난 사람의 별말 아닌 말에도 하하하-(장성규 씨 웃음소리와 비슷)하고 크게 웃다가 "웃음이 많으시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어쩌겠는가. 그게 첫 만남의 어색함을 푸는 나의 오랜 습관이자 무의식적으로 터져 나오는 행동인 것을. 그 행동으로 인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내가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행동을 꼭 고칠 필요는 없다. 동이는 늘 그래 왔듯이 물을 마시러 갈 때 천천히, 우아하게 걸으면 되고,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웃음에 후한 사람이 되어 첫 만남 치고 사운드가 시끌벅적한 대화를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문제는, 고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문제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