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를 하면서 드립백 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작년에 회사 동료 분께 드립백 커피를 선물 받아 처음 먹어보게 되었는데 그땐 어떻게 물을 부어야 하는지도 몰라 드립백 종이의 윗부분을 찢지도 않고 티백처럼 물을 부을 뻔했다. 그만큼 커피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재택근무 덕분에 아침에 여유 시간이 생기자 온갖 멋을 부리고 싶어 졌다. 창가 너머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음악을 듣거나, 의자에 발을 올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런데 왠지 여기에 카누는 조금 아쉬워, 집 근처 커피가 맛있기로 소문난 카페에서 1,500원짜리 드립백을 몇 개 사 왔다.
드립백 윗부분을 찢자 카페에서나 맡을 수 있었던 고소한 커피 향이 코 안으로 가득 들어왔다. 물이 끓는 동안 코 끝에 커피 가루가 묻을 정도로 드립백 종이 안에 코를 들이 넣고 향을 맡았다.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하면 되는 카누와 달리, 드립백은 물을 붓는 2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드립백 바깥으로 삐져나오는 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만사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한 컵 가득 커피가 차면 천천히 커피의 맛을 탐험한다. 같이 수다를 떨 사람은 없지만, 그래서 커피의 맛에만 집중하게 된다. 커피의 온전한 맛. "아-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제야 그 카페에 왜 그렇게 사람이 북적였는지 이해가 된다.
드립백 커피에 빠진 이후, 큰 박스로 사두었던 카누는 입에도 대지 않고 있다. 물론, 카누는 합리적인 가격에 비해 맛있는 커피이고, 드립백에 물을 부을 시간 조차 없이 바쁘고 귀찮을 때에 즐겨 먹게 될 커피겠지만, 여유 시간이 있을 때에는 더 맛있는 드립백 커피를 찾게 된다. 보통 우리 엄마는 이것을 '입이 고급이 되었다'라고 표현한다.
한 번 눈이 높아진 사람은 눈을 낮추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내 생각에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린 말이다. 취업 준비생 시절, 종종 혼자 여행을 떠나던 나에게 호텔은 사치였다. 친구와 숙박비를 나눌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즐겨 찾는 곳은 그나마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였다. 그러다 서른이 되던 해, 나에게 주는 선물로 처음 혼자 호캉스를 떠났다. 호텔에 입실하자마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소리를 지르고 하루 종일 셀카를 찍고 30대의 버킷리스트를 쓰고 별의별 일을 다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또 혼자 여행을 갈 일이 있으면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했다. 이제는 하루 이틀 호텔 숙박비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음에도 말이다. 호텔은 호텔 나름의 가치가 있고, 게스트하우스는 게스트하우스만의 가치가 있으니까. 옆방 사람들과 같이 맥주를 나누어 마시던 그 밤의 추억은, 호텔에서는 쌓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중요한 것은, 눈이 높아져보는 경험이다. 같은 가격이더라도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눈이 높아져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만약 내가 1,500원짜리 드립백의 맛과 가치를 느끼지 못했더라면, 5,000원짜리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그 가치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커피가 다 거기서 거기지, 하며 카누만 마셨을지도. 누군가는 눈이 높은 사람을 두고 '까다롭다'고도하는데, 반대로 말하면 눈이 낮은 사람은 '무딘'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눈이 낮은 사람보다는 눈이 높은 사람이 되고 싶다. 눈이 높다는 건 나에게 더 좋은, 더 잘 맞는 것을 예리하게 고를 수 있는 감각을 가졌다는 뜻이므로.
커피가 맛있기로 소문난 우리 동네 카페 계산대에는 늘 드립백이 놓여 있었다. 그 카페에 자주 가면서도 한 번도 그 드립백을 살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드립백을 선물 받은 후에야 드립백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