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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LE Oct 07. 2022

내 나니 여자라(10)_완결

한중록을 통해 본 ‘여인 혜경궁’

5장 혜경궁 홍 씨를 다시 떠나보내며...  


 한중록은 혜경궁 홍 씨가 회갑 해부터 그로부터 10년 뒤인 71세 때까지 네 번으로 나뉘어 기록된 궁중 문학이다. 한중록을 읽을 때 그 속에 담긴 역사라든지 언어, 역사, 풍속 등을 알아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겠지만 무엇보다도 한중록의 작자인 혜경궁 홍 씨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앞서 한중록에 나타난 혜경궁 홍 씨의 삶을 자녀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보았다.      


혜경궁 홍 씨와 잠시나마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다

 

  혜경궁 홍 씨는 한 사람의 딸로서 부모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와 애정을 보낸 효녀였다. 그녀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아버지의 신원을 위해 힘쓰며 결국 그녀의 손자 순조대에 그 소망이 이루어진다.     


  또한 어머니로서의 그녀 역시 아들을 끝까지 믿고 보호해주었던 최고의 어머니였다. 임오화변 당시 11세였던 아들이 24세에 보위에 오르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왔으며 아들이 보위에 오른 후 자신의 친정을 벌할 때도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그녀는 다급한 시류 속에 남편을 버리고 아들을 택한 냉정한 아내였다. 임오화변 당일, 남편의 죽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녀는 남편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을뿐더러 남편이 마지막 자구책으로 쓰려했던 세손의 휘항을 가져오는 것도 거부한다. 또한 남편이 뒤주에 갇혀 시름하는 동안 남편을 살리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그 모든 일을 하늘의 뜻으로만 돌렸다. 바로 이 부분에서 많은 이들은 혜경궁 홍 씨가 비정하고 노회한 정객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가 이번에 한중록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얻은 결론은 혜경궁 홍 씨는 자신이 살기 위해 남편을 버리고 아들을 택하는 냉정함도 가지고 있었으나 그녀 역시 당시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최대의 피해자였다는 것이다. 영조, 정조, 순조대를 걸쳐 살며 81세의 천수를 누리다 간 궁중의 어른을 피해자였다고 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 할지 모르나 한 인간으로서 그녀를 볼 때 그녀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사랑하는 아들에 의해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내고, 목숨과 같은 아들을 먼저 보내 가슴에 묻었던 한(恨) 많은 한(恨)의 여인이었다.      


  한중록과 함께 역사 뒤안길에 묻혀 있던 혜경궁 홍 씨와 잠시 잠깐이라도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 그녀를 보낸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 씨의 합장릉, 융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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