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을 통해 본 ‘여인 혜경궁’
앞서 6편에 걸쳐 한중록에 나타난 혜경궁 홍 씨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한 사람의 딸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또한 어머니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혜경궁 홍 씨. 그동안 혜경궁 홍 씨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남편을 허황되게 잃고 한 많은 삶을 살다 간 비련의 여인으로 보는 시각과 다른 하나는 당시 당쟁의 논리 속에 남편 대신 아들을 택한 비정하고 노회한 정객으로 보는 시각이다. 두 시각은 너무나도 상반적이어서 어떠한 시각으로 혜경궁 홍 씨를 바라봐야 할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한중록을 면밀히 살펴보며 얻은 결론은 혜경궁 홍 씨는 결코 사회 순응적이고 피동적인 여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편을 허황되게 보내고 한 많은 일평생을 보낸 비련의 여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지고 있는 태양인 남편 사도세자 대신에 잠재적인 태양, 아들 정조를 택했다. 그녀는 강인한 여인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보위에 오르기까지 호심탐탐 그것을 방해하려는 세력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당찬 여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친정을 지키기 위해 한중록을 기록한 무서운 여인이기도 했다. 한중록은 결코 작자의 한스러운 삶과 임오화변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한중록은 작자의 손자 순조에게 임오화변 이후 몰락한 자신의 친정을 복원시켜달라고 기록한, 철저하게 의도된 기록물인 것이다. 그녀의 친정이 몰락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한중록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혜경궁 홍 씨를 당쟁의 논리 속에 남편 대신 아들을 택한 비정하고 노회한 정객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그녀가 당쟁의 논리 속에 남편 대신 아들을 택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녀를 비정한 여인으로 보기엔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삶에 동정과 연민의 마음이 생긴다. 혜경궁 홍 씨는 9살의 나이에 궁에 들어와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28살이란 젊은 나이에 지아비를 잃는다. 당쟁의 논리 속에 그녀가 남편을 버리고 아들을 택하게 된 것도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였을 것이다. 그렇게 남편을 잃은 후 그녀는 그녀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희망, 아들이 보위에 오르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보살핀다. 하지만 보위에 오른 아들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임오화변의 죄를 물어 자신의 친정을 몰락시키는 것이었다. 그녀가 아들만큼이나 사랑한, 자신의 아버지가 누명을 벗지 못한 채 돌아가시고, 그녀의 숙부, 즉 작은 아버지와 동생이 사사를 당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의 가슴속의 한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이 모든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훗날 회갑년을 맞아 정조가 그녀의 친정 식구들에게 벼슬을 주고 성대한 잔치에 초대하는 등 기쁨을 맛보지만 그리고 5년 뒤 자식을 앞서 보내는 큰 슬픔을 맛본다.
혜경궁 홍 씨. 그녀는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자식까지 먼저 보내는 한 많은 인생을 산다. 그녀가 당쟁의 논리 속에 남편을 버리고 자식과 친정을 택했다 하더라도 그녀를 남편을 버린 비정한 여인으로만 보기에는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삶에 담긴 한의 정도가 너무나 깊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녀를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여성으로서 연민하고 또 연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