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을 통해 본 ‘여인 혜경궁’
지난 편에는 한중록을 통해 아내로서의 혜경궁 홍 씨의 삶, 특히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한 9살부터 사도세자의 병환이 있기 전인 18세~19세까지의 약 10년 간의 삶을 살펴보았다. 한중록에 기록된 사도세자의 병환이 있기 전까지 혜경궁 홍 씨와 사도세자의 사이는 여느 부부처럼 좋았다. 그런데... 사도세자의 병환이 발생한 후, 남편의 성품이 급속도로 나빠졌고 나서부터 이들의 관계는 소원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파국에 치닫게 된다. 이번 편에서는 사도세자의 병환 발병 후부터 사도세자의 죽음 때까지 아내로서의 혜경궁 홍 씨의 삶을 따라가 보겠다.
아내로서의 삶②
[사도세자 병환 후(18~19세)~죽음(28세)]
작자는 임오화변의 진상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한중록의 네 번째 파트에서 사도세자의 정신이상 증세에 대한 설명으로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한중록에 나타난 세자의 정신이상 증세는 옷을 입으면 발작하는 ‘의대증’과 ‘화병’이다. 이 병으로 세자는 결국 여러 내인과 후궁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이때부터 미행을 다니기 시작하여 작자는 윗전에서 혹시나 알게 될까 봐 늘 가슴을 졸이며 살게 된다. 한중록에서의 작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정신이상자인 남편을 전처럼 사랑하기란 정말이지 어려웠을 것이다. 사도세자 역시 무슨 이유에선지 이 시기에 다른 후궁들을 많이 취한다. 특히 ‘빙애’는 세자에게 큰 사랑을 얻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가 곧 훗날 은전 군과 청근현주를 낳은 귀인 박 씨를 말한다. 세자 역시 작자에게서 마음이 떠나 다른 후궁들에게 뻗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훗날 귀인 박 씨는 세자의 옷시중을 들다가 세자의 의대증이 도지는 바람에 세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데 작자는 이것 역시 세자의 정신이상 증세에 대한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 옷시중을 현주의 어미가 들었는데 병환이 점점 더하셔서 그것을 총애하시던 것도 잊으셨으므로 신사년 정월에 미행을 하려고 옷을 갈아입으시다가 의대증이 발작하여 그것을 쳐서 죽이고 나오셨다. (「한중록」, p.55)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귀인 박 씨가 세자의 옷시중을 들었다는 것이다. 후궁이 의대 시중과 같은 일상적인 수발을 든 것은 사도세자와 부부생활을 한 것이 작자가 아니라 후궁이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혜경궁 홍 씨와 사도세자, 이 둘의 부부관계가 정상적이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은 그 밖에도 여러 군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조와 세자 간의 부자 갈등이 점점 심화되는 때에 세자가 작자에게 영조가 경희궁으로 이사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라고 하지만 작자가 들어주지 않자 작자에게 바둑판을 던져 눈에 부상을 입힌다.
나는 이어하여 내지 않는다고 섰는 것을 바둑판을 던져서 왼편 눈이 상하여 하마터면 눈망울이 빠질 뻔하였으나 요행히 그런 지경을 면하였으나 놀랍게 붓고 상처가 대단해서...(중략)... 어렵고 위태로운 일이 무수하니 어찌 다 쓰리요. ( 「한중록」, p.54)
또한 세자가 온행을 떠났을 때는 단 며칠만이라도 얼굴을 보지 않아 마음이 편한 것 같았다고 막말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 정상적인 부부관계라면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까.
소천이 아무리 중하나 하도 망극하고 두려워서 내 목숨이 부지 불각 중 어느 날 마칠지 모르니 마음이 뵈옵지 말기만 원하여 온천 가신 그동안만이라도 다행한 것 같았다. (「한중록」, p.43)
작자는 둘 사이에 관계가 이토록 나빠진 것이 모두 세자의 정신병 때문이라고 하며 안타까워했지만 그 이면에는 그렇기 때문에 세자의 죽음은 필연적인 결과였다는 결론을 가져온다.
겉으로는 무척이나 남편을 위하고 또 사랑한다는 것을 과시하지만 결과적으로 남편의 온갖 비행을 폭로하며 남편이 죽은 것은 모두 자초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어 친정의 혐의를 벗기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한중록에 기록된 것처럼 사도세자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해도 남편에 대한 혜경궁 홍 씨의 감정이 그다지 따뜻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도세자에게 변이 있던 그날 아침, 작자는 그러한 변이 있을지 미리 짐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자는 세자에게 사전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으며 또한 학질을 가장하여 목전에 닥친 죽음을 피해보고자 하는 세자의 마지막 몸부림도 외면했다.
그때가 오정쯤이나 되었는데 홀연히 무수한 까치떼가 경춘전을 에워싸고 울었다. 이것이 무슨 징조일까 괴이하였다. 세손이 환경전에 계셨으므로 내 마음이 황망 중 세손의 몸이 어찌 될지 걱정스러워서 그리 내려가서 세손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놀라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 천만 당부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중략)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하자”는 말도 “달아나자”는 말씀도 않고, 좌우를 치우치지도 않으시고 조금도 홧증내신 기색이 없이, 썩 용포를 달라 하여 입으시면서 “내가 학질을 앓는다 하려 하니 세손의 휘항을 가져오라”하셨다. 내가 그 휘항은 작으니 당신 휘항을 쓰시라고 하여 나인더러 가져오라 하였으니, 꿈밖에 썩 하시는 말씀이 “자네가 참 무섭고 흉한 사람일세. 자네는 세손 데리고 오래 살려 하기에 오늘 내가 나가서 죽겠기로 그것을 꺼려서 세손 휘항을 내게 안 씌우려는 그 심술을 알겠네” (「한중록」, p.64~65)
어떻게 한 남자의 아내로 19년을 산 작자는 그토록 남편의 죽음 앞에 냉정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단순히 남편의 정신질환 때문이었을까. 작자의 말대로 남편의 정신질환 때문에 부부 사이가 멀어졌다고 치자. 하지만 그것으로 남편의 죽음을 방관하고 묵인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위에 한중록 텍스트를 보면 사도세자의 말과 행동은 결코 정신질환자라고 볼 수 없다. 사도세자의 말대로 작자는 여러 이유로-당쟁, 부자간의 갈등, 정신질환 등-지는 태양이 되어 버린 남편을 버리고 잠재적인 태양인 아들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작자가 의도적으로 세손을 선택하고 남편을 버렸든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남편의 죽음을 한스럽게 목도하였든지 그 진위와는 상관없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혜경궁 홍 씨를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가엾은 여인으로 여기며 동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