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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LE Sep 17. 2022

내 나니 여자라(5)

한중록을 통해 본 ‘여인 혜경궁’

  지난 편에는 한중록을 통해 자녀로서의 혜경궁 홍 씨의 삶을 이해해봤다면, 이번 편과 다음 편에서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삶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여성으로서 살기 힘든 불평등 시대에 태어나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하고, 동갑내기 세자와 결혼생활을 하고, 2남 2녀를 낳고, 2명을 유산하고...그리고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기까지...파란만장한 그녀의 삶,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삶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3장 한중록을 통해 본 혜경궁 홍 씨의 삶

 아내로서의 삶①     

[출처=SBS 비밀의 문]

  조선시대 여인에게 있어 남편이란 이른바 ‘소천(所天)’으로써 극진한 경모의 대상이며, 여인은 자신의 생사화복을 남편과 함께 하였다. 더욱이 혜경궁에게 남편 사도세자는 앞으로 군주가 될 사람이었으므로 군신의 관계가 중첩된다. 따라서 혜경궁은 남편을 대할 때 겉으로는 마치 영조를 대하는 것과 같이 깍듯이 공경하는 태도를 보인다.      


  작자가 9세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한 후 18세(영조 28년, 1752년)까지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 씨의 사이가 여느 부부처럼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자의 나이 18~19세 되던 때인 임신년과 계유년 사이에 사도세자의 병환이 있었다고 한중록은 기록하고 있다. 한중록에 의하면 이때부터 작자와 사도세자의 부부관계는 소원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여기에서는 입궁한 직후(9세)부터 사도세자의 병환이 발병하기 전(약 18세)과 그 이후로 나누어 혜경궁 홍 씨가 한 남자의 아내로서 살아간 모습을 추측해보고자 한다.   



  

[입궁 이후(9세)~사도세자 병환 전(18세~19세)]

  동갑내기 남편인 사도세자는 과거의 급제한 장인의 소식을 알리려고 멀리 떨어진 아내를 찾아갈 정도로 자상하며 인간적이었다.      


  “장인이 과거에 급제하셨다!!”

  경모궁께서 매우 기뻐하시니, 내가 그때 다른 곳에 있었는데 그곳까지 찾아오셔서 희색이 가득하시며 즐거워하셨다.(... 중략) 합격 증서를 받은 후에 나아가 뵈오니, 동궁께서 부친이 하사 받은 꽃을 만지며 즐거워하셨다. (「한중록」 혜원출판, p.25)     


  장인의 과거 급제 소식을 전해주려고 친히 먼 곳까지 아내를 찾아갔다는 점, 장인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였다는 점으로 보아 작자와의 관계 역시 여타의 부부처럼 이상이 없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사도세자는 작자의 친정동생들에게도 매우 잘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경모궁께서 친정 동생 형제들을 더욱 사랑하셔서, 궁중에 들어올 때면 한시도 떠나지 못하게 하시고 좌우에 세우고 다니셨다. (「한중록」, p.28)     


  친정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작자에게 남편의 이러한 행동은 매우 황송했을 것이고 이것은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러는 사이 경오년(영조 26년, 1750)에 혜경궁은 의소를 낳는다. 하지만 두 해가 지난봄에 그만 잃게 되어 모두가 낙심하게 되는 가운데 그 해 9월 그 이름도 유명한 ‘산(훗날 정조대왕)’이 태어난다. 이렇게 태어난 아들 ‘산’을 보고 사도세자, 경모궁은 늘 웃고 기뻐했다. 그리고 늘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아들을 얻었으니 무슨 근심이 있으리오.”


[출처=SBS 비밀의 문]

  이처럼 작자와 남편과의 관계는 자식을 낳고 기뻐하는 여느 부부처럼 끈끈하고 좋았다. 더욱이 남편은 작자의 부친뿐 아니라 모친에게까지 그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경모궁께서 모친을 대접하심이 보통 집의 장모 대접과 달리 매우 지극하셨으므로, 우리 모친께서 우러러 아끼시고 귀중히 여기시며 사위로 대하지 못하시니 그 정성이 어떠했겠는가?

  모친께서 궁중에 들어오셨을 때는 혹 경모궁께서 노한 일이 계시다가도, “일이 그렇지 않습니다”하고 아뢰면 곧 안색을 고치셨다. 갑술년에 청연을 낳을 때도 모친께서 50여 일을 궐내에 머무르시며 경모궁을 늘 모시고 지내셨는데, 매우 친밀히 대접해 주시니 모친께서 항상 감사함을 이기지 못하셨다. (「한중록」, p.35)


  이처럼 사도세자는 그 병환이 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작자에게 완벽한 남편이었다. 자식들에겐 자상한 아버지요,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에겐 예의 바른 사위요, 매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중록에서 작자는 불행히 임신년과 계유년 사이에 병환이 있으셨고 그 이후로 그 성품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 부부의 관계는 소원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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