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호 그 남자 (1)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마음

by EDLE

1

A.M.7:30

다른 걸 먹어야지 하면서도 오늘도 같은 메뉴를 시키고야 말았다.

「아줌마~! 여기 비빔밥 하나주세요!」

비빔밥. 내가 비빔밥을 먹는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나 최악이진 않으니까.

식당 안은 한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이른 아침시간에 식당밥 먹는 사람이 뭐 그리 흔하겠는가.

아까부터 식당주인은 카운터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녀의 나이는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아마 그녀의 짙은 화장과 긴 생머리 탓일 것이다. 그녀는 일체 서빙이나 조리를 하지 않았고 절대로 배달을 나가지 않았다.

「비빔밥 나왔습니다.」

음식냄새를 맞자 왕성하게 식욕이 올라왔다. 달그작달그작. 콩나물과 시금치 나물, 그리고 달짝지근한 고추장과 계란후라이가 한데로 뒤엉켜 씹혀졌다.

언제 일어났는지 여주인은 열심히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대고 있었다.

「오늘 새벽 4시, 서울시 용산구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숨진..」

이런!…또 하루의 시작인가보다.



2

A.M.9:00

「정희 작가님, 수고 많으셨어요. 이거...아쉬워서 어쩌죠?」

「막상 끝내고 나니까 시원섭섭하네요. 담에 사적인 자리에서 함 뵈요.」

피곤했다. 사실 그 생각뿐이었다.

「다음 만화 구상 하시면 또 연락주세요.」

「네. 그러죠.」

스물 네 시간도 모자라 스물다섯 시간이나 영업하는 작업실 앞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 두 개를 샀다. 분명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또 작업실 앞이다.

「2200원입니다.」

다섯 평 남짓한 규모의 작은 작업실 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편안한 느낌, 내 집 냄새. 우습다. 정작 내 집에 가면 현관문을 열자마자 낯선 냄새가 코를 찌르겠지. 빈집냄새...속은 없는데 달랑 껍데기만 존재하는 냄새. 방안 구석구석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냄새로 저마다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튀는 녀석은 냉장고겠고.

「애끼지 말고 열심히 묵으라. 뭐니뭐니해도 건강이 최고니께.」

엄마의 손길이 묻은 음식들은 제멋대로 변하여 흉측하게 어그러져 있을 것이다. 자기나 챙길 것이지, 만날 남 걱정은...

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귀신이었다.

「밥 묵었나?」

이제 익숙해 질 때도 되었는데 엄마는 여전히 내게 낯설다. 내가 스물이었던가. 술독에 빠져 사는 아빠를 피해, 그의 무자비한 손을 피해,나와 남동생을 버리고 간 엄마를 아주 오랜만에, 강산이 한 번 변할 만한 시간이 흐른 뒤 만났던 그때에도 엄마의 첫 물음은 밥, 밥이었었지. 그리고 엄만 미안하다고 했었다.

「아~먹었지. 엄마는?」

자기걱정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달쯤에 한번 올라가마 했다.

창문을 열어놓으니까 제법 기분이 상쾌해졌다. 책상에 지저분하게 놓여있는 우유곽과 과자봉지들을 차근차근 능숙한 손놀림으로 처치하기 시작했다. 하얀색 쓰레기봉투가 점점 배가 부르더니 작업실 한 바퀴를 돌자 이내 꽉 차버렸다.

그놈들을 처치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그 소리가 들렸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말도 안 돼. 들릴 리가 없잖아. 여긴 내 아파트도 아닌데. 오늘도 그는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나와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지만 이름도 나이도 얼굴마저 모르는 그 사람은 내게 낯선 익숙함이었다. 302호, 남자, 그리고 목소리...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무어라 정의되지 못한 감정이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거 같았다.

이제 그놈들을 시원하게 처치했으니 좀 자야겠다. 이게 얼마 만에 낮잠이란 말인가. 그의 노랫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거 같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빛이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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