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리기를 즐겨한다. 처음엔 직업 특성상 꾸준한 체력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의무감, 때론 반강제적(?)으로 달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 뛰는 습관이 "반강제적"으로 머슬 메모리에 기억되어 달리지 않으면 뭔가 찝찝하고, 심지어 오랫동안 달리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한 수준까지 되었다. 그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난 뒤에는 나의 달리기 라이프에도 전환점이 왔다. 그때부터 나는 겁 없이 풀코스 마라톤에 등록하기 시작했고, 몇 년 뒤 나는 한국에서 3대 메이저 마라톤이라고 불리는 대회들을(동아, JTBC, 춘천) 모두 완주한 피니셔가 되었다. 지금은 3시간 34분 31초라는 어엿한 한국 공인기록을 보유한 자칭 '러너'다.
작년 9월, 코로나 19로 인한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나는 미국으로 해외연수를 가게 되었다. 일상 깊숙이 스며든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공포는 기대했던 "미국 라이프"를 산산조각 냈다. 여행제한 조치로 다른 주로의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식재료를 사러 마트를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제도적으로 이동에 제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 광활한 미국의 땅 크기는 집돌이 본성을 불가피하게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다행히 평생을 자타공인 집돌이로 살아온 사람이라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이 전혀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면서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기에 아쉬움은 있었다.
그러다 미국 동료 한 명이 근처에 좋은 곳이 있다며 내게 소개해준 공원이 있었다. Smith Lake, 우리나라로 치면 호수공원(?)쯤 되는 곳인데 트레일 러닝, MTB, 낚시, 캠핑 등 아웃도어 레크리에이션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달리기 좋은 트레일 코스가 난이도 별로 형성되어 있어 트레일 러너에게는 최적의 장소이다. 한국에서는 도심공원이나 강변, 트랙만 달려서 그동안 트레일 러닝에 대한 흥미가 없었던 나였지만,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미국 공원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게 내가 트레일 러닝에 흠뻑 빠지도록 만들었다. 지금은 주말마다 가서 찾는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곳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아마 이곳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코로나 블루"를 피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힐링 그 자체인 곳.
공원을 관통하는 메인도로,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과 맑은 하늘이 인상적이다.
길게 뻗은 트레일 코스의 나무들
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정체모를 리본(?)이 없는 미국의 공원이 너무 좋았다. 한국에 있는 산들을 다니다 보면 수많은 산악회 이름들이 새겨진 형형색색의 리본들이 가는 곳곳마다 매달려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이곳은 청정지역이다. 대신 미국 공원 측에서 표준화된 이정표를 나무마다 붙여놓아 찾는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하고 있다.
초급자 코스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경고(?)
엄연히 이야기하자면 이곳은 산이라기보다는 숲에 가깝다. 넓고 완만한 평지로 되어 있어서 트레일 러닝 하기에도, 진정한 MTB를 즐기기에도 적합하다. 한국 산에서 MTB 타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심을 새삼 느낀다.
Expert라고 되어 있지만 한국의 수많은 산을 다녀본 사람에게는 그저 동네 뒷산보다 못한 수준이다.
미국 생활의 장점을 하나 꼽자면 맑은 하늘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매년 찾아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맑은 하늘을 보기가 손에 꼽을 정도지만 이곳에서는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항상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없던 꿈과 야망(?)도 자연스럽게 생길 정도로 경이롭다.
인적이 드문 곳은 아니지만 땅 자체가 워낙 넓어서 사람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달리다 보면 반려동물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나는 반려동물에 대한 특정한 편견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멀리서 혹은 사진으로 보는 것만 좋아할 뿐이지 내가 직접 대하는 것에는 상당히 어색하고 불편해하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목줄이 없는 엄청난 크기의 반려동물들이 트레일 러닝을 하는 나를 자기 주인을 위해하는 사람인 줄 알고 무섭게 짖으며 쫓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너무 무섭다.
사실 여행 취향으로만 따지면 나는 자연보다 도시를 선호하는 사람이다. 뭐랄까 자연은 그 자체로 경이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에게 안겨주지만 그 이상의 깊은 감명을 주진 않는다고 느꼈다. 반면 나에게 도시는 그것을 이루고 있는 건물, 구조물, 상점들, 각각의 사람들 등 수많은 것들이 모여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만들어 준다. (도시 특유의 '갬성'도 좋아한다.) 그런데 이곳은 나에게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그 이상의 깊은 감명'을 주는 곳이다. 항상 나는 이곳에서 달리고 땀 흘리며 고국과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때론 수많은 생각들을 한다. 외롭고 고달플 수밖에 없는 나 홀로 유학생활의 유일한 안식처. Smith Lake. 한국에 가게 되면 너무나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