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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die Feb 01. 2021

코로나, 그리고 주지육림(酒池肉林)

단상

주지육림(酒池肉林)


주지육림이란 술이 연못을 이루고 고기가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모습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것은 사마천의 사기 은본기에 언급되는 내용으로 임금이 국사를 내팽개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모습을 빗대 지적하는 말로 보인다. 사기에 언급된 내용을 살펴보면, 임금이 큰 유원지와 별궁을 지어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달아 숲을 만든 다음 남녀가 벌거벗고 뛰어놀게 하여 밤낮없이 계속 술을 퍼 마시고 즐겼다고 나와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흥미롭게도 이 주지육림이라는 단어는 6.25 전쟁기 신문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전쟁이 한참 진행되던 1951년 1월 11일 자 동아일보 "전쟁을 망각한 부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주지육림이라는 단어가 언급되고 있다. 기자는 기사에서 대한민국의 병참기지이자, 임시수도인 부산의 천태만상을 지적하며 전선과 후방의 괴리감을 표현하고 있다. 1952년 11월 23일 자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전방에서는 보충병력이 부족해 어려운 상황인데, 후방에 직접 가보니 기름지고 사지가 똑바른 청년들이 직장도 나가지 않고 하는 일도 없이 술집이나 놀러 다니며 중개인 활동으로 번 돈으로 춤이나 추고 다니고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 싸웠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씁쓸한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동아일보 1951년 1월 11일자 기사,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요즘 SNS 피드나 댓글들을 보면 "이 시국에"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 말은 주로 코로나19로 힘들어진 우리의 삶을 한탄하는 의미로 쓰이지만, 때로는 방역수칙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상대방을 비판할 때도 자주 쓰이고 있다. 이러한 요즘의 모습을 과거 6.25 전쟁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코로나19 전선에서는 수많은 의료진들이 목숨을 걸고 바이러스와 사투하고 있는데, 이것을 망각하고 개인의 욕구 충족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뀌었지만 슬프게도 여전히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득 서로가 서로를 판단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과연 바람직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를 감시하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다. 이 잣대를 벗어나는 사람들에게는 익명이라는 방패에 숨어 입에 담지 못한 날 선 단어들로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람 개인이 갖고 있는 맥락(context)을 무시한 채, 자신이 보고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상대방을 임의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는 과정에서 인지의 오류가 생기고, 결국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 생긴다.


70년 전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존재하듯이, 지침을 잘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지침을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어쩌면 자연의 섭리이고 인간의 본질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법과 제도권 안에서 이에 따르는 위험을 관리하고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한 개인의 비행을 국민의 이름으로 돌팔매질하고 '처단'하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스스로 부정하는 순간, 우리가 어렵게 만들어 놓은 자유로운 세계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그런 국가들을 보아왔고, 지금도 제일 가까운 곳에 두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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