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만하고 나가고 싶다

시즌9를 앞두며...

by 이도
사건은 언제나 그렇듯 불현듯, 우연히 시작되었다.



새벽부터 내린 비가 그칠 듯 말 듯 추적추적 이어지던 3월 아침이었다. 다른 도시보다 일찍 찾아온 대구의 거리두기 노력이 한창이던 그때. 나와 너는 준비 없이 시작된 집에서의 시간을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영화, 보드게임, 독서는 흘러넘치는 시간엔 어울리지 않았다. 산책과 나들이, 여행에 밀려 미리 계획을 하고 시간을 내어해야 했던 것들이었다. 틈 시간을 메우던 일들은 넘치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했고, 두 번째 주말을 맞으며 시간은 다시 쏟아졌다.

결국 우리는 워킹데드에 손을 대고 말았다. 시즌1은 6회로 되어있으며 러닝타임은 회당 40분이다. 영화 두 편 분량이었고, 우중충한 오전 11시에 어울리는 좀비물이었다. 볼만한 지 어떤지 알아볼 생각으로 1회를 재생했고 시즌1이 끝나기 전까지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충격과 공포. 마치 그들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이라도 느끼는 듯. 그래도 우리는 저 문 밖의 상황이 그들보다는 치명적이지 않아서 다행일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진심으로. 한국인으로 나오는 글렌이 살아서 다행이다.라는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고 저녁을 준비한 뒤 시즌2로 넘어갔다. 시즌2부터는 16회 11시간쯤이다.

그날 이후 워킹데드는 블랙홀처럼 시간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전처럼 책 읽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4월이 되었고, 시즌8을 마무리하고 있다. 화창한 날씨. 따뜻한 공기. 찬란한 풀과 꽃. 하지만 우리는 나갈 수 없었다. 네간의 끝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에 애정 하는 캐릭터를 잃고 방황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가는가 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돌아갈 일상은 없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방황을 끝내고 그들의 현실을 마주할 때에 맞춰 우리도 합류했다.


어제는 데릴이 꿈에 나왔다. 허스키한 저음의 목소리로 한국말을 하는 데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쌀쌀맞은 다정한 행동을 하는 그를 보며 질투를 했던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떠도 생생한 그 느낌에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며 너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너는 웃었고 그 상대가 데릴이어서 기분 나쁠 수도 없다고 했다. 데릴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최애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즌이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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