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에서 사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영혼을 끊어 모아 대출을 받아야 할까? 내 영혼은 집 한 채 값이 될까? 요즘 텔레비전 뉴스, 라디오, 인터넷 할 것 없이 모든 곳에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하루가 다르게 들썩거리는 주식시장과 부동산 정책에 관한 정보 말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시장을 판단하고 새로운 법을 해석해 놓은 정보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나도 늦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생후 4개월 아기가 현금 10억으로 압구정 24억 아파트를 샀다는 이야기. 2년 전 아파트를 구입한 A씨, 전세 계약을 연장한 B씨, 빌라는 구입한 C씨의 2년 전 자산가치와 현재 자산가치를 비교하며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했다.’는 기사의 헤드라인은 자극적이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가 의(衣), 식(食), 주(住)였던 시대가 있었다. 2020년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를 다시 정의해 본다면 의(衣), 식(食), 주(住)(株)에 ‘빚’을 추가한 네 가지를 기본 요소로 재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 ‘주’에는 대출이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나는 올해 결혼 2년 차이다. 살고 있는 집은 있지만 가진 집은 없어 주거환경이 불안정하다. 지금 집이 전세였다면 계약 연장이나 이사에 대해 한참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 주택 2층에서 살고 있는 지라 이번 전세난은 회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사를 미루며 집 없이 살 수는 없다.
처음 주택에 살기로 결정했을 때는 걱정이 많았다. 아파트에 익숙했던 나는 ‘주택은 불편하다.’는 사람들의 말에 뭐가 얼마나 불편할지 예상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좁고 어두컴컴해서 무서웠던 골목은 대문을 맞대고 사는 이웃들만이 사용하는 공간임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당연했던 층간소음도 없어졌다. 새벽 윗집 발소리에 깨지 않을 수 있다니. 무엇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타는 시간이 사라진 것에 가장 놀랐다. 물론 ‘불편하다’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아파트보다 특히 더 불편한 점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이사 가야지.’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주택생활은 시간이 지날수록 만족스러운 생활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가 앞으로 주택에서 살기로 결정하게 된 과정은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를 부자연스러워했다. 살면서 값이 오르는 아파트와 살수록 값이 내려가는 주택 중에서 우리의 선택은 오답이었다. 정답을 아는 이들은 우리의 선택을 답답하게 생각했다. 우리의 결정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옳은 방향을 알려주기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살지는 않더라고 재테크는 해야지.” “남들 다 하는데 너희만 안 해서 어쩌려고.” “조금만 배워서 빨리 시작하면 나중이 편하다.” “누구네 집은 몇 년 만에 얼마가 올랐다더라.” 그때마다 생각이 많아지고 불안해져 결심이 흔들리기도 했다. ‘내가 정말 틀린 선택을 하고 있으면 어떡하나.’ ‘나중에 후회하게 되려나.’ 등등 기꺼이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사는 것 같은 기분에 혼란스러웠다.
올해 3월 대구의 코로나 창궐 시기. 집에서 워킹데드를 보며 주식 계좌를 만들었다. 지금 계좌를 개설하면 주식 준다고 하기도 하고, 급변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말라는 유튜버의 외침에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고민 끝에 30만 원을 증권계좌로 이체했다. 그리고 내 시간과 에너지는 초 단위로 바뀌는 주식시장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책 읽을 시간은 회사를 검색하는 시간이 되었고 산책할 시간은 주식 사는 타이밍을 고민하는 시간으로 쓰였다. 시장의 규모에 비교하자면 내 30만 원은 하찮은 자본이었다. 결론은 금방 났다. 내 영혼은 300만 원이나 3000만 원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 생각만 해도 좋다. 삶에 돈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도 사실이다. 예금과 적금으로 돈을 모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모임을 운영하고, 책을 만들고, 산책하면서 주식에서 꾸준한 수익을 얻기란 적어도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선택을 해야 한다면 기꺼이 주식을 포기하고 내 삶을 택하겠다.
평생을 한 동네, 골목에서 산 남편과 산책을 하면 자연스럽게 그의 추억을 듣게 된다. 그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물론, 그가 돈을 뺏긴 골목, 첫 키스한 계단참, 좋아했던 여자아이 집을 자나 친다. 모두 떠나고 그와 나만 골목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했다. 우리마저 이 동네를 떠나기 전에 영상으로 남겨보기로 했다. 골목을 돌아다니며 찍은 영상을 보며 내레이션 대본을 썼다. 낡고 허름하긴 해도 주인의 취향껏 꾸며진 집들이었다. 그렇게 낯선 동네가 우리 동네가 되었다.
남편의 학생 시절엔 시끌벅적했다는 말이 믿기지 않게 지금 동네는 조용하다. 그만큼 사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큰길 건너 옆 동내는 작년에 재개발된다는 말이 있더니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벌써 집들은 사라졌고 본격적인 공사가 한창이다.
그 동네가 사라지기 전, 사진으로 남겨놓자며 텅 빈 동네를 돌아다닌 적 있다. 한 낮이었는데도 적막함과 방치된 쓰레기들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몇몇 사람들의 집 앞에는 빨간 글씨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골목을 걸으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너무 멀쩡한 집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작은 마당이 딸린 예쁜 주택이 많았다. 난간에 화분은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그 집 현관에는 빨간 페인트로 X자가 그어져 있다. 점점 주택과 골목이 있는 동네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살만한 장소가 사라지는 것이다.
집값을 몇 배로 불리지 못한 선택이 인생을 후회로 가득 차게 할까. 놓친 돈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게 주택을 선택한 후회가 되진 않을 것이다. 인생의 결은 집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방식에서 결정된다. 살고 싶은 방식을 선택했다면 어떤 종류의 집에서 사는지가 더 이상 중요하진 않다.